'공감'을 주제로 한 교육 중에 누군가 질문을 해왔다.
"남편이 어제도 12시가 넘어서 술에 취해 들어왔어요. 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 있고, 자기도 힘들 거라 생각해요. 이해는 되는데 말하기 싫고 화가 나요. 11시 넘지 않기로 지난번에도 약속을 했었는데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어요!"
"지금 그 말을 하면서 기분이 어떠신가요?"
"가슴이 쪼그라들고 슬퍼요."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가슴으로 손이 올라갔다. 그분에게 쪼그라든 가슴과 눈물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했고, 내가 들은 말 중에 나에게 울리는 말을 반영해주었다. 그리고 '공감의 길'을 안내했다.
공감은 '행위'가 아니라 '심정'에 관한 것이다. 행위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끝없는 도돌이표 위를 걷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공감한다는 것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의 행위가 아니라, 생의 고단함과 실패의 두려움, 그의 꿈과 열망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내려놓고 상대가 있는 그곳으로 가려고 하지만 가지지 않는다. 무언가 가로막혀 있다. 그건 바로 좌절된 욕구들과 얼어붙은 감정들과 관련이 있다.
'나는 얼마나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고 싶고, 인생을 예찬하고, 삶을 확장하고, 성장하고 싶었던가! 그 꿈이 깨어지고 나는 또 얼마나 화나고 슬프고 외롭고 무서웠던가!' 이런 나에 대한 이해와 애도의 시간들이 있어야 나답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질문했던 분은 자신은 살아오면서 남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고, 힘들다고 말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렇게 반복되면서 버틴 힘들이 자신의 몸을 긴장과 딴딴한 갑옷으로 가둔 것이다. 긴장과 갑옷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내 속의 초라한 겁쟁이를 만나야 할 용기가.
안전한 공간에서 때로 눈물 흘리고 힘겨움을 탄식하면서 뭉쳤던 감정을 풀고, 위로와 지지로 재경험한다면, 당신은 자신 속에 숨은 빛을 발견하고 타인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대한 공감은 먼저 '자기공감'이라는 통로를 거쳐야만 다다르는 곳이다.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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