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 떡살

입력 2019-04-22 18:00: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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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였다. 밋밋한 떡에다 다양한 문양이나 무늬를 찍어 놓으면 때깔이 나고 한층 더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그 같은 문양이나 무늬를 찍는 도장판을 떡살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떡본' '떡손' '병형(餠型)'이라고도 한다. 우리 겨레의 격조 높은 음식문화이자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술과 음식은 제사나 행사 때 매우 중요한 준비물이다. 그 가운데서도 떡은 명절이나 잔치 때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그 같은 연유로 해서 떡에다 무병장수․다산․부귀와 같은 염원을 담아 문양이나 무늬를 찍었다. 또한 밋밋한 떡에다 다양한 문양을 새김으로서 멋스러움을 더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떡살은 만든 재료에 따라 나무떡살과 자기떡살로 구분한다. 나무떡살은 참나무․밤나무․박달나무 등으로 만든다. 자기떡살은 사기․백자․오지 같은 것으로 만드는데, 주로 백자로 만든 둥근 모양이 많다. 특히 궁중에서 쓰던 것은 매우 고급스러운 것들이 많다. 그리고 문양은 기하학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꽃․새․나비 같은 아름다운 무늬를 음각 또는 양각으로 파서 사용한다. 예컨대 연꽃․국화․매화․석류 같은 꽃무늬가 많고, 더러는 수복(壽福)․원희(圓喜) 같은 글씨 문양도 있다.

고증에 따르면, 태초부터 벽에 그리는 행위 또는 그림․문양․무늬는 의사표현 방식이자 언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치를 때 음식에다 메시지를 새겼다. 그 같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문양이나 무늬다. 이를테면 연꽃문양은 군자 또는 선비의 표상으로 사용되었고, 물고기문양은 과거 급제나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로 해서 지체 높은 집안에서는 고유의 문양이 있었으며 대대로 물려받아 사용하였다.

떡살의 경우 문양이나 무늬는 가문에 따라 정해졌다. 또한 그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어 왔다. 그렇게 해서 어느 집안에서 통용이 되면 좀처럼 그 문양을 바꾸지 않을 뿐더러 다른 집안에서 빌리려 해도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정해진 떡살을 부득이한 일로 바꾸려고 하면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비로소 가능하였다. 그런가 하면 서민들 가정에서도 문양이나 무늬를 새기는 떡살은 소중한 생활도구 가운데 하나였다. 좋은 운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떡집에서는 여러 가지 문양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전통을 지키는 양반 댁에서도 웬만한 것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네 살림살이 가운데 떡살을 갖추고 있는 가정을 별로 보지 못하였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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