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의 시대와 미술]정점식 화백의 북만주 시절 작품

입력 2019-04-11 10:12:43 수정 2019-04-11 19:51:15

정점식 화백의 1946년 작
정점식 화백의 1946년 작 '바다풍경'-캔버스에 유채, 44x37cm

지난 하노이 북미회담 때 북한 지도자의 열차여행도 화제가 되었는데 평양에서 출발한 기차로 베트남까지 그것도 논스톱으로 갈 수 있다는 게 뜻밖의 뉴스였다. 어쩌면 전혀 놀랄 일도 아닌데 경이로웠던 것은 분단 이후 우리 육로가 그렇게 대륙과 연결된다는 점을 일상에서 별로 실감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대한 지리적 공간적 상상력마저 위축된 채 좁은 시야로 각종 편견에 갇혀 살지는 않았는지. 그것이 분단시대의 예술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겠다.

1941년 겨울 정점식 화백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을 거쳐 소만 국경인 흑하로 긴 여행을 했다. 약 4년 반 그곳에 머무는 동안 북만주 일대의 풍광을 대하며 제작한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에세이로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이역 풍물들을 소략하게 스케치한 드로잉 몇 점 외엔 당시 그림들을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한다. 하지만 이홍식 선생 소장의 이 '바다풍경'(1946) 한 점은 그 무렵 만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의 패망 소식을 듣고 이듬해 6월경 그곳 망명지를 떠나면서 그린 것 같은 이 작품은 너른 강이나 바다를 다소 벅찬 기분으로 조망한 듯하다. 감개무량함에 물빛과 흰 돛배, 하늘의 구름 등에 활기차고 신비한 기운이 서려있다. 당시 그의 조형적 시각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이 그림의 현저한 특징은 즉흥적인 기분을 전달하는 자유로운 붓질에서 야기된 데포르마시옹(왜곡) 조짐이다. 희망 섞인 들뜬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는 분명한 의도에서 전형적인 초기 모더니즘의 양식 감각이 읽힌다.

정점식은 북만에 머무는 동안 그 지역의 드넓은 자연환경이 자신으로 하여금 초월적이고 비현실적인 추상화 과정을 받아들이게 했다고 기술했는데 그것은 미술사적으로도 대단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20세기 초 독일표현주의나 추상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미학적 가설들을 잘 안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미학자 텐느가 말한 환경적 요인이나 특히 빌헤름 보링거의 논저인 '추상과 감정이입'에서 주장한 바를 상기시킨다.

그런데 추상화로의 방향 전환에 결정적 요인이 어디 물리적 환경뿐이랴. 독일의 표현주의가 1차 세계대전의 암운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나치의 엄습이 예고되고 있던 때였다면 우리의 근대미술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 수용되었다. 그래서 자연주의를 수용하고 극복 못한 것을 두고 식민지배에 대한 순응이자 동화라는 비판을 했다. 그러나 양식 일변도의 잣대만 가지고 하는 재단도 이제 삼가고 그 시대에 어떤 게 가능했을지 재고해볼 일이 아닌가 싶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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