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산업과 문화, 그리고 지역혁신

입력 2019-04-09 14:38:46 수정 2019-04-09 19:06:15

공연 중심 문화도시 자리 잡은 대구
관광·비즈니스와 연계 새 기회 모색
도시 경쟁력=문화의 힘 세계적 추세
산업만으론 지속 가능 발전 힘들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
이장우 경북대 교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과 같이 '먹고사는' 경제가 해결된 뒤 '듣고 보는' 문화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산업화로 가난을 극복한 우리 사회는 'economy first, culture next'라는 이분법적 생각이 강하다.

그러나 한류 문화가 세계를 강타한 2010년 이후에는 'culture first, economy next'를 생각할 정도로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이 커졌다. 문제는 급속히 커진 문화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필자는 1987년 기술벤처기업 자문을 시작으로 10년 만인 1997년에는 벤처기업협회 설립에 고문으로 참여해 한국 경제의 정보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와 인터넷 버블과 함께 찾아온 벤처 열풍 속에서 필자가 만난 것은 뜻밖에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에스엠과 공연산업을 대표한 난타였다. 당시 한류라는 말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문화에 산업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조심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들과 '한국문화산업포럼'이라는 사단법인을 결성해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제언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러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준비하는 지금은 기술벤처와 문화콘텐츠의 주역들이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모여 미래 유망 사업에 대한 논의와 교류를 함께하고 있다. 융합의 시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2004년 한국문화산업포럼의 대구 세미나가 인연이 되어 뮤지컬 '맘마미아'가 2005년 초 서울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두 달간 장기 공연에 성공해 6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정부 지원보다도 소중한 뮤지컬 시장을 발견하게 된 사실이다. 이를 발판으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즉 딤프(DIMF)가 2006년 프레 대회를 시작으로 아시아 유일의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로서 위상을 구축하였고 대구가 공연 중심 문화도시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난달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제4대 딤프 이사장에 취임했다. 최근 대융합의 시대를 맞아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대구의 뮤지컬산업 발전 자체만이 아니다. 음악과 공연, 그리고 관광과 비즈니스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새로운 기회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첫째, 교육 부문으로서 배우와 창작자를 양성하는 뮤지컬 아카데미와 스타 오디션 등은 이미 아시아 각국 인재들을 대구로 모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둘째, 관광산업 진흥으로서 축제 기간 동안 차별화된 투어 콘텐츠 제공을 통해 국내는 물론 대만과 중국 등 해외 관광객 유치를 확대하면서 문화도시 대구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

셋째, 창업, 창직, 창작 등 젊은이들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담아낼 지역혁신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을 창조도시로 발전시킨 것은 SXSW라는 창업축제이다. 이 축제는 낮에는 기술 창업, 밤에는 음악, 영화, 게임 등 문화 관련 행사가 동시에 이뤄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딤프 사무실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와 이웃에 위치하고 창업카페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즐거운 우연'(serendipity)이 아닐 수 없다.

문화산업은 공산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고 젊은 인재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 하며 지역과 국가의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등 창의성 결집과 지역 혁신성을 제고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산업화 물결을 한국과 중국 등에 물려준 선진 도시들은 새로운 경쟁력을 디자인, 음악, 관광, 스포츠 등 문화 분야에서 찾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관광산업을 통해 극복하고 있는 일본, 전통 제조 기업들이 물러간 자리를 축구라는 공연산업으로 채우고 있는 '맨유의 도시' 맨체스터, 그리고 '비틀스의 도시' 리버풀 등에서 보듯이 도시 경쟁력을 문화의 힘에서 찾으려는 전략은 이미 세계적 추세가 됐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의 경제력은 배불리 먹을 만하면 족하고,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다. 산업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는 명제를 새삼 확인하고 있는 요즈음 '문화의 힘'은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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