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 전 대구적십자 병원 원장
1961년 5월 16일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이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군사정부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구호를 외쳤다. 근검절약부터 하자며 시범을 보인다고 그해 10월부터 공무원들을 각가지 간소복을 입게 했다. 어떤 곳은 모택동, 김일성이 입던 국민복과 흡사한 모양에다 회색으로 염색된 옷도 입고 어떤 직장에는 골덴 감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쌀을 아낀다고 돌솥밥을 못 먹게 했다. 도시락은 반드시 혼식을 싸게 하고 학교와 관공서의 휴식시간에 소위 '재건 체조' 혹은 '신세기 체조'라고도 하는 체조를 했다. 학생들은 수업 두 시간 마치면 운동장에 나가 체조를 했다. 간소복 입은 교사들도 운동장에 같이 나오기는 해도 대게는 어정어정 돌아다니거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몇몇만 체조를 했다.
체조는 덴마크, 스웨덴에서 창안되고 독일로 들어와 발전이 된 운동이다. 일본은 1869년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면서 유럽의 체조가 수입되었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부터 체조를 하기 시작해 해방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1953년 12월 30일 서울 시공관에서 김영일의 지도로 체조 발표회가 있은 뒤 KBS 라디오에서 체조 음악이 매일 방송 되었다. 그 후 1968년 경희대 유근림 교수가 '신세기 체조'를 새로 발표하였으나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 대중화에 실패한다. 1970년부터는 정부 주도로 '국민체조' 혹은 '국민보건체조'라는 이름으로 체조하기가 강조되었고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정부가 앞장서서 전국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로 공공기관은 매일 전국적으로 국민체조를 했다. 대구도 예외 없이 모든 관공서나 학교에서 체조를 하였는데 시작 음악이 나오기 전에 "국민체조오- 시이작"하는 우렁찬 구령 소리가 먼저 나온다. 이 멋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키가 163cm의 단신으로 체조선수 출신인 경희대 체육학과 유근림 교수였다. 매일 전국 모든 곳 체조시간에 유 교수의 목소리는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목소리 좋다고 칭찬하노라면 "원래 목소리는 좋지 않는데 녹음이 잘 되서 그렇다."며 겸손의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구령 후 체조 동작에 맞추어 나오던 배경 음악은 40대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흘러간 명곡'으로 기억될 것이다. 배경 음악은 경희대 음대 김희조 교수가 작곡했다.
국민체조가 운동 효과는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 전북대 고영호 교수는 "시대가 변했다고 사람의 신체구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근육 이완, 관절의 가동범위를 넓히는 준비운동으로서는 충분히 효과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산소 운동으로서는 동작이 부족하다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이런 단점을 보충하기 위해 1999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개발한 '새천년건강체조'가 국악 선율에다 태권도, 탈춤을 응용한 체조를 만들어 에어로빅 수준으로 강도를 올렸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순서를 기억하기 힘든 어려운 체조가 되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늘품체조'를 선보였다. 말의 뜻은 '품격이 늘어난다'는 말인데 체조를 하면 근육이 늘어나지 왜 품격이 늘어나는지 알 수 없다. 동네마다 체육관이 있는 요즘 단체 체조는 더 이상 국민보건에 이바지 하는 운동이 되지 못한다. 매스 게임이나 단체 체조는 옛날 독일이나 요즘 북한에서 쇼를 하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차은택 감독이 배윤정 단장에게 늘품체조를 의뢰했고 배윤정은 정아름과 함께 체조 동작을 개발했다.
왜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민보건체조를 장려한 박정희 대통령은 비명에 가고 늘품체조를 창안한 박근혜 대통령은 감옥에 있다. 일구월심(日久月深) 국민들 건강 증진에 애쓰던 대구경북 출신 대통령 부녀의 불운한 말년에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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