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따로] 꽃과 상춘가(賞春歌)

입력 2019-04-03 17:30:00

꽃이 피었다. 필자의 연구실 앞 벚나무에 벚꽃이 만개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북대캠퍼스에서 가장 예쁘고도 화려하고 흐드러지게 피는 벚나무이다. 매년 봄이 오면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활짝 핀 벚꽃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이 시간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야말로 꽃이 만발한 봄이다. 전국이 꽃축제로 찬란한 봄을 찬양하고 있다. 서울 한강봄꽃축제에서부터 안동의 벚꽃축제, 여수의 진달래꽃축제, 제주의 유채꽃축제에 이르기까지 봄의 아름다움을 누리기 좋은 시절이다. 메말랐던 감성이 촉촉해지면서 꽃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전국 최대의 벚꽃축제인 진해 군항제에서는 36만 그루의 벚나무가 자태를 뽐낸다는 축제 기사를 보면서 '꽃과 사람'으로 생각이 튄다.

우리는 유달리 사람을 꽃으로 비유하길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은 꽃과 닮은꼴이다. 화려한 정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우아한 장미꽃도 있고, 저 들판에 피었다가 이름 없이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지는 꽃도 있듯이, 장미와 같은 삶도 이름 없는 들꽃과 같은 삶도 있다.

'애초부터/ 들국화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월의 장미로/ 우아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어느 바람 부는 날/ 척박한 들판 언저리/ 우연히 앉게 되었을 뿐입니다.' 신두업 시인의 '들국화'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우아하고 화려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장미가 되기를 원했지만 들판의 꽃처럼 바람과 발길에 휩쓸리는 들국화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준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그저 우연히 그렇게 장미와 들국화가 되었다는 말로. 시인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우연적 요소에 의해 어렵고 힘든 현재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장미꽃과 들꽃을 구별하고 달리 본다. 이름 없는 들꽃이라 무시하고 차별한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짓밟기까지 한다.
가냘프고 힘이 없어 스러지지만 아침 햇살에 들녘의 꽃은 희망이라는 빛을 보고 다시 일어난다. 비록 들녘의 이름 없는 꽃이라 어렵고 힘들어서 때로는 슬픔에 넘어지기도 하지만 들꽃은 들과 숲이라는 수채화를 아름다운 색상으로 채우는 물감이다.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이름 없는 꽃들을 위로한다.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짙은 숲과 산을 채우는 것은 장미꽃이 아니라 이름 없는 들꽃들이다. 비록 자신이 이름 없는 들꽃과 같은 삶을 산다 해도 그리 무가치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는 듯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장미꽃이든, 벚꽃이든, 들꽃이든 상관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화사한 벚꽃을 바라보듯이 이름 없는 들꽃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점차 각박해져가는 세상이 지금보다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꽃은 피었다. 꽃으로 인해 사람을,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근처의 공원에서, 등산로에서 이름 없는 들꽃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본다면, 꽃축제에 못 간다 한들 우리 사는 동네가 축제가 진행되는 장소가 아니겠는가. 비록 힘든 현실이지만 만개한 벚꽃 잎이 떨어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벚꽃 엔딩 한 소절 흥얼거리면서 자신을 위한 상춘가(賞春歌)를 불러보자.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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