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기미상궁(氣味尙宮)

입력 2019-04-0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조선시대 왕의 죽음에는 유난히 독살설이 많다. 특히 국정이 혼미했던 조선 후기 국왕과 세자들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독살설에 힘을 실었다. 어느 시대건 권력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과 의혹 속에는 어김없이 권력과 암투 그리고 음모와 배신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마련이다.

조선 왕의 독살설은 성군 세종대왕의 왕위를 물려받은 문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양대군이 권력을 찬탈해 세조로 즉위했을 때 형인 문종에게 잘못된 음식을 처방했던 의원의 이름이 공신 명단에 올랐던 것을 근거로 삼는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하며 국제 정세를 두루 익혔던 소현세자도 석연찮은 죽음을 맞았다.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의 죽음은 독살설이 가장 유력하다. 수구 세력인 노론 벽파를 등에 업은 젊은 할머니 정순왕후와의 권력 투쟁은 TV 드라마로도 많이 소개되었다. 정조의 손자이자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죽음도 그렇다. 영특했던 효명세자가 뜻을 펴보기도 전에 세상을 뜨면서 조선은 세도정치에 이어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파 싸움과 권력 투쟁에서는 왕의 목숨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왕이 수라를 들기 전에 시좌하고 있던 상궁이 먼저 음식 맛을 보는 것이 의례적인 절차였다. 그것은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살피는 일종의 검식(檢食) 과정으로 '기미(氣味)를 본다'고 했다. 그 역할을 담당한 상궁을 '기미상궁'이라 했다.

현대의 권력자도 마찬가지이다. 독재자일수록 그렇다. 늘 암살의 공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수행비서에게 반드시 먼저 음식을 맛보게 했고,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도 여러 명의 검식관을 항상 대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24시간 검식관이 동행하며 조미료까지도 검식한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북미 정상회담 때 기미상궁 역할을 한 수행원들이 있었다는 소식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좋은 음식조차 맘놓고 먹지 못하고 뒤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독재자의 삶을 그래도 부러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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