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학이나 심리학 전반에 대한 통찰을 그림으로 통합하는 것이 나의 주된 작업이죠. 특히 꾸밈이 없고 가식이 개입하지 않는 솔직함 때문에 연필로만 그리는 드로잉을 고집합니다."
산드라 바스케즈 델라 호라(53)의 작품은 우리에겐 어쩌면 낯선 그림일 수도 있다. 배경이 없는 누런 종이에 정치, 종교, 성(性), 사회적 현실, 민속과 문화, 질병, 죽음 등을 주제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인간의 근본적 문제들을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로 원시적이고 야만스런 인간의 욕망을 과격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손갤러리에서 첫 아시아 개인전을 열게 된 산드라의 'Take Back My Shadow'(내 그림자를 찾아줘)전 작품들을 처음 마주하면 마치 '어! 이 그림은 뭐지'할 정도로 장난기나 악의적 풍자가 가득하다. 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진지함을 작가의 경험을 통해 매우 솔직하게 담아냄으로써 인간을 향한 깊은 애정과 연민을 자극하는 무언가와 마주하게 됨을 경험한다. 대담한 성적 표현도 있고 잔인하고 파괴적인 묘사도 있다.
"이번 한국의 대구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제가 소장하던 작품들로 전시를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합쳐진 작품들로 한국에서도 나의 드로잉에 나타난 이미지와 비슷한 경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우손갤러리를 통해 전시하게 됐습니다."
칠레 태생의 산드라는 현재 외동딸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국제적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모국인 칠레의 종교적 문화와 토속 신앙 및 주술 등에서 이끌어낸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결합한 그녀의 작품은 삶과 죽음의 극단적 순간들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처럼 드라마틱한 반면에 동시대에서도 반복되는 이런 인간의 비극을 보편적 신화와 전설, 우화를 통해 희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우리 안에 잊혀진 무의식의 경험을 형성하고 있다.
"나 역시 어찌 보면 딸과 함께하는 국제적 노마드(유목민)인 셈입니다. 하지만 나의 드로잉을 통해 내 딸이 모국인 칠레를 포함한 남미의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산드라는 각양각색의 종이 위에 연필로 드로잉하는 방식을 초기부터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으며 1997년부터는 완성된 드로잉을 왁스를 녹여 만든 액체에 담가 내어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방법은 고대 그리스의 성서나 논문 등의 기록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왁스에 담겨 나오면 종이 재질마다 서로 다른 표면에 생기를 불어넣은 듯한 독특한 물성과 모호한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산드라 바스케즈 델라 호라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MOMA, 프랑스 국립퐁피두 센터,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등 세계적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6월 8일(토)까지. 문의 053)427-7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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