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 시인이 열 번 째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를 펴냈다. '슬프다 풀 끗혜 이슬'은 세창서관이 1935년 발간한 딱지본 소설 '미남자(美男子)의 루(淚)'에 수록된 옛 소설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옛 소설에서 제목을 따온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시집에는 옛 딱지본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관련한 작품들이 3부에 수록돼 있다. 딱지본 소설은 딱지처럼 표지가 울긋불긋하고, 값도 싼 이야기책을 말한다.
송재학의 시는 어렵다. 시 작품을 실타래 풀 듯 한줄 한줄 해체해서 될 성질도 아니지만, 어쨌든 송재학의 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용케 줄 끝을 찾아내 뽑아내기 시작했는데, 얼마 풀리지 않아 엉클어지는 바람에 더 어쩌지 못하는 실타래 같다.
'꽃차례처럼 별이 운다 밤이니까 더 가까이 운다 별보다 더 맑은 소리는 별들 사이에 있다 거울도 어둠도 견디지 못하면서 금 가도록 운다 되돌아오지 않는 소리를 머금고 운다 맨살과 맨살이 부딪치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울고 있다 하지만 창백한 별빛만 지상에 왔다 별의 울음소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중략) 별의 눈매는 가벼워서 별빛은 벌써 떠나고 눈물의 시늉만 저 별에 남았다 오, 우리가 방금 지켜본 별은 비문(碑文)이 있다' -아직 별의 울음소리는 도착하지 않았다- 중에서.(16쪽)

밤하늘의 별은 '시각적 대상(물체)'이다. 송재학은 이 시각적 대상을 '청각적 대상(소리)'으로 형상화한다. 문학이라는 예술장르가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시각적 대상을 청각적 대상으로 드러내는 것이 문학인 것이다. 하지만 송재학의 시 세계는 그쯤에 서서 독자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의 시 세계는 '별은 울지만, 그 울음소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로 멀찍이 달아난다.
사람이 거기 서 있기만 해도 우리 눈은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소리치거나 울지 않으면 우리 귀는 들을 수 없다. 울고 있으나 그 울음소리가 도착하지 않으니 그의 울음은 '눈물의 시늉'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난처하고 참담하다.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이제 별빛은 떠나고 없으니 그 울음은 무(無)가 되는 것일까? 송재학 시인은 '아니다'고 노래한다. 그 울음소리는 비문이 되어 별에 남는다. 하지만 비문 역시 패인 자국일뿐 소리는 아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송재학의 시 세계는 정밀하고 내밀하다. 그 내밀함에 대해 (많은) 분석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여전히 비밀스럽고 해명되지 않는다." 며 이번 시집에 묶어놓은 작품들 역시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시집은 총3부 50편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풀기 힘든 암호들인데, 작품 제목들이 그나마 열쇠 노릇을 한다. 또한 그 제목들은 재미있다.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눈썹씨의 하루' '발자국을 기다리는 발자국' '불가능의 흰색' 등. 130쪽, 9천원.
▷송재학 시인
1955년 영천 출생.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 '진흙 얼굴' '내간체를 얻다' '날짜들' '검은색'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상화시인상 , 편운문학상, 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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