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꽃에게 길을 묻다

입력 2019-03-26 09:45:50 수정 2019-03-27 18:28:49

동진스님 백련차문화원장

동진스님 백련차문화원장
동진스님 백련차문화원장

4월은 봄의 향내가 짙어진다. 겨울을 이겨낸 생명이 싹을 틔운다. 자신의 모습을 맘껏 드러낸다. 매화와 산수유가 세상을 향기롭게 하고 동백, 개나리, 진달래, 벚꽃과 목련이 거리를 수놓는다. 철쭉과 목단, 작약이 피어날 때면 농부들은 논밭을 갈고 채소 씨를 뿌린다. 한 해를 건강히 지내라고 나무에 거름을 주고 수로에 쌓인 나뭇잎은 거둬내고 물길을 연다. 생명이 넘치는 계절에 사람들은 꽃에게 길을 묻는다. 그리고 길을 떠난다.

봄철 꽃 나들이를 갈 때 도움이 되는 책 한 권이 있다. 시와 산문과 사진이 잘 어우러져 있는 소설가 조용호의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를 챙긴다. 작가는 섬진강의 매화, 구례 산수유, 유달산 개나리 등을 찾아가 꽃 내음을 맡고 사진으로 찍고 기행문을 썼다. 꽃구경 가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꽃을 통해 사람은 아득한 시간 저편을 보게 된다. 자신의 젊음을 보게 되고 사라져간 화려한 지난날의 추억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찾아올 앞날을 비춰보고 봄의 향기와 꽃을 통해 자아를 느낀다. 앞산 보문사의 정원에 수형 좋은 목련이 허공에 화사한 꽃을 피운다. 이맘때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 조영식 작사, 김동진 작곡 '목련화'와 박목월 작사, 김순애 작곡 '4월의 노래'다. '목련화'는 테너 엄정행의 대표 노래다. 가사 곳곳에 감성이 묻어있다.

'4월의 노래' 한 구절.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전후(戰後)의 폐허에서 인생의 봄을 맞는 소녀들에게 봄날의 화창함을 노래하며 희망을 안겨준 노래다.

발길이 남도에 이른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산속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강진만이 산수화처럼 보인다. 고즈넉한 백련사 부도탑이 눈길을 끈다. 붉은 동백꽃이 송이째 뚝뚝 떨어져 빨간 카펫처럼 장관을 이룬다. 행여 그 붉은 송이가 내딛는 발에 짓이겨지면 내 가슴이 밟히는 것 같아 까치발을 하고 서성이던 젊은 날의 감동이 아련하다.

섬진강가의 매화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다. 광양 다압면 청매실농원 20만㎡(6만여 평)에 펼쳐진 매화꽃은 그 향기가 매혹적이다. 퇴계 이황과 두향의 매화 사랑 이야기와 남명 조식의 설매(雪梅)가 반긴다.

엄동설한에 너를 보니 자리를 뜰 수 없어, 눈 내린 남은 밤을 하얗게 지새웠구나!

선비 집 가난이야 오래된 일이지만, 네가 다시 와주어서 맑음을 얻었노라.

쌍계사 십 리 벚꽃 밤길 중간지점 어느 곳. 나무 평상을 펴고 위로 뻗은 벚나무 가지에 둥근 지등을 밝힌다. 시냇물 소리 벗 삼아 쌍계제다 우전을 우리며 밤 벚꽃에 흠뻑 취한다. 미풍에 꽃잎이 눈처럼 날리고 찻잔에 떨어지고 주변에 쌓이면 그리움이 되고 영겁의 시간이 된다.

이 찬란하고 생명이 넘치는 계절! 사람 사는 사회가 좀 더 거룩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 꽃들은 피어난다.

자연과학은 오염되지 않는 생명의 보존과 순환의 연속이어야 한다. 물과 대지와 공기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오염되지 않을 때 젊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세먼지로 해방될 수 있다.

봄이 절정(絶頂)을 향해 치달을 때 꽃에게 길을 묻고 길에서 진리를 찾는다. 천지는 희망으로 가득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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