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작곡가·대구문화재단 이사)
지난 주(20일) 수성아트피아 초청 크리스티안 짐머만 피아노독주회를 다녀왔다.
'피아니스들의 피아니스트'라는 영광스런 별명이 늘 그를 따라 다니지만 이 한 마디의 말로 그를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준 연주회였다. 그는 피아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으며, 시인이었고, 음악으로 공간에 수를 놓는 마술사였다. 특히 페달을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얻어지는 단락과 단락의 연결부에서 생기는 화음과 화음의 섞임현상은 마치 돌로 지은 유럽 고 성당에서의 잔향을 듣는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이었으며, 음과 음의 연결을 일일이 페달로 조절하는 세련되고 신비로운 진행은 내면에서 소화된 브람스와 쇼팽을 자신의 이야기로 거침없이 풀어 설명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귀를 더 넓게 열어 공연장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공간의 울림을 느낄 때의 기분은 무대와 객석이 일체가 되어 긴장감을 유지하는 특별한 매력을 선물했다.
지난 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번스타인의 2번 교향곡 협연을 위해 대구를 다녀간 아쉬움 때문에 더욱 기대가 컸던 이날 독주회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공연시간 한 시간 전부터 그야말로 축제의 한 마당이었다. 공연장 전석이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차고, 짐머만이 객석의 분위기에 예민하여 연주를 중단한 적도 있다는 소문 때문에 휴대폰 단속이 철저히 이루어졌다. 긴장에서 오는 객석의 기침소리 때문에 사탕을 나누어주는 배려까지 수성아트피아의 서비스가 마음을 흐뭇하게 하였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성큼성큼 가볍게 무대중앙으로 들어온 짐머만은 급히 인사를 하고, 장내의 소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자리에 앉으면서 프로그램의 순서를 바꾸어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70년대 후반 투명하듯 선명하고 깨끗한 청년기의 그의 소리가 그려내는 브람스를 좋아했던 필자는 그의 소리가 이미 세련되고 농익은 중후한 질감을 입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브람스의 고전적인 형식의 틀을 완전히 벗어버린 5악장의 소나타 전개와 맞물린 거침없는 짐머만의 음악이야기가 아름답고 심오하였다.
중간 휴식 후 이어진 쇼팽의 스케르쪼는 쇼팽의 혼으로 노래하는 짐머만의 이야기였다. 두 번째 스케르쪼의 마지막 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사를 하면서도 두 번이나 익살스럽게 그 음을 다시 눌러보면서 객석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음악회 후반은 네 번째 곡의 시작부분에서 장난기 있는 몸짓을 더하며 스케르쪼의 유쾌함을 속 시원히 공유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곡의 쇼팽 소품으로 선물한 앙코르. 이 곡들은 쇼팽의 밑그림에 짐머만을 입힌 유쾌한 변형이 있어서 더욱 재미 있었다.
악보를 피아노 위에 펼쳐 놓고 연주를 하는 모습이 암보의 의무감을 벗고 음악에 더 충실하겠다는 의사표현으로 보인 것도 '피아노 독주는 반드시 암보로 해야 하는 것이 전통이 되게 한 리스트의 굴레'를 벗어난 자유로움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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