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屍身을 위한 '돈질'

입력 2019-03-09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러시아 10월 혁명을 이끈 레닌은 숨을 거두면서 자신을 어머니 묘지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은 이를 무시하고 시신을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냉장 방식이 채택됐다. 그러나 당시 소련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시신은 부패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더 나은 냉장시설을 수입했지만 부패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레닌장례위원회는 방부 처리로 방향을 바꾸었다. 어떤 기술이 사용됐는지는 여전히 비밀이지만 이 시도는 성공해 레닌의 시신은 지금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누워 있다.

소련 공산당이 레닌의 시신을 영구 보존키로 한 배경에는 '건신주의'(建神主義)가 있었다. 건신주의란 과학의 힘으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현대판 주술(呪術)로, 건신주의자들은 비유적 의미가 아닌 실제 육신의 부활(復活)을 믿었다. 소련 공산당이 레닌의 시신을 영구 보존키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닌이 현세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레닌장례위원회의 명칭도 '불멸화위원회'였다.

불멸화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소련 공산당이 1973년 당 문서를 정리하면서 제일 먼저 발급한 것은 레닌의 당원증이었다. 체제 전환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당국은 18개월마다 특수 제작한 새 양복으로 레닌의 시신을 갈아입혔다. 이렇게 레닌의 시신을 생전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러시아는 2016년 처음 공개했는데 연간 20만달러라고 한다.

러시아가 여전히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 방부 처리를 하고 있으며 그 비용은 연간 40만달러(약 4억5천만원)라고 미국 뉴욕포스트가 보도했다. 러시아는 김일성·김정일 사망 때 전문가팀을 보내 방부 처리를 한 바 있으며 김일성 시신 처리에 100만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헛웃음이 나오는 '돈질'이다. 그 돈으로 인민을 먹였으면 '이밥에 고깃국'은 아니라도 주린 배는 조금이나마 채워졌을 것이다. 김일성·김정일은 죽어서도 인민들을 굶겼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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