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성지 '임청각'

입력 2019-03-01 06:30:00

임청각 모습. 안동시 제공
임청각 모습. 안동시 제공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일본에 주권을 넘긴 그날, 나라 잃은 치욕의 역사는 시작됐다.

안동의 선비 향산 이만도 선생은 24일 동안 곡기를 끊어 '자정순국'으로 대의를 지키지 못함에 목숨을 버렸다.

이후 전국의 선비들이 순국대열에 나섰으며, 목숨을 버리지 못했던 선비들은 또 다른 항일투쟁의 길에 온몸을 내던졌다.

1911년 1월, 안동의 유학자였던 석주 이상룡 선생(고성 이씨 임청각파 17대 종손)은 이른 아침 500년을 지켜오던 99칸 종택을 둘러봤다.

이상룡 선생은 400여 명에 이르는 노비를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마당 중앙에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거라."

노비들은 마당에 불을 피우면서도 평소와는 다른 이 선생의 행동에 걱정했다.

"나라를 잃은 아픔은 나와 너희나 똑같구나. 너희도 이제 독립군이다."

이 말과 함께 이 선생은 품속에서 노비 문서를 꺼내 불태우고 이들을 해방시켰다. 나라를 되찾는 길에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모아야 한다는 절절한 마음에서였다.

이 선생은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며 항일과 독립투쟁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이어 사당에 올라 조상들에게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고하고 모신 '신주'(神主)를 가져와 마당 한쪽 땅에 묻었다.

명망 높았던 안동의 유림가 종손으로서 노비 해방과 신주를 땅에 묻은 것은 당시로써는 엄청난 혁신이자 결단이었다.

◆'임청각 매각' 독립 위해 절실했던 만주생활

'보배로운 우리 강산 삼천리, 조선 500년간 문화를 꽃피웠네. 고향 동산 근심하지 말거라. 태평한 훗날 다시 돌아와 머무르리다.'

임청각 모습. 안동시 제공
임청각 모습. 안동시 제공

구국을 위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을 담은 시 '거국음'(去國吟)을 남긴 이 선생은 인근 내앞마을의 김동삼 등 일가와 함께 만주행을 단행했다.

지린성 유화현에 정착한 이 선생은 한인 자치기구인 '경학사'를 설립했다. 한인 동포사회를 규합해 신흥강습소를 신흥무관학교로 키워 독립군 양성에 나섰다.

그럴 즈음, 자금도 바닥을 드러냈다. 선생은 아들을 고향 안동으로 은밀히 보내 500년 임청각 종택을 팔아 독립 자금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운영하고, 여기에서 배출된 3천500여 명의 청년은 의열단 등 훗날 항일전투에서 맹활약했다.

하지만 1932년 중국 동북부를 침공했던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면서 독립운동이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독립 희망이 꺾여 낙담한 탓인지 이 선생은 그해 5월 병을 얻어 생을 마감했다.

이 선생은 "조선 해방 전에는 나를 데려갈 생각을 하지 마라. 독립되면 유골을 싸서 조상 발치에 묻어 달라. 외세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더욱 힘써 목적을 관철하라"고 유언했다.

◆일제 '불령선인' 말살 정책…임청각 철길로 훼손

일제는 다수의 '불령선인'(일제가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을 일컫던 말)이 태어난 집으로 정기를 끊어버리겠다며 임청각 마당 한가운데 중앙선 철길을 냈다.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 역시 강제로 철거해 버렸다.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는 민족 정기 말살 정책의 하나로 독립투사 10명을 배출한 임청각 50여 채를 뜯어내고, 중앙선 철로를 관통시켰다. 정부는 2025년까지 중앙선 철로 이설 등 임청각 복원 정비에 나서고 있다. 안동시 제공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는 민족 정기 말살 정책의 하나로 독립투사 10명을 배출한 임청각 50여 채를 뜯어내고, 중앙선 철로를 관통시켰다. 정부는 2025년까지 중앙선 철로 이설 등 임청각 복원 정비에 나서고 있다. 안동시 제공

이 선생의 아들 이준형 선생의 '동구유고'에는 "집을 뜯어낸다고 해서 상당히 가슴 아팠다"는 회상이 담겨있다. 이후에도 이상룡 선생의 손자와 손녀는 광복 이후 고아원 생활을 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임청각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하며 임청각의 옛 모습 회복사업의 추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상룡 선생의 현손인 이창수(54) 임청각 종손은 "복원·정비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돼 임청각이 나라 사랑의 정신을 되살리는 미래세대 교육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