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입력 2019-02-27 10:02:39 수정 2019-02-27 19:01:12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대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대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대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몇 해 전에 졸업한 제자가 문자로 안부 인사를 보내왔다. 타 지역의 이름난 병원에서 소아과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제자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소아과 특성상 마음 아픈 일이 많아서 보호자랑 엉엉 울기도 하고 당직 서다 울기도 하면서 지냈단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의사로 성장하는 것 같아 내심 고맙고 흐뭇했다. 한편으로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소아과는 앞으로 환자 수가 계속 줄어들 텐데, 괜찮겠니?'

곳곳에 병원이 늘어가고 있지만 유독 산부인과와 소아과는 고전 중이다.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2014년부터 17년까지 전체 병의원 사업자 수가 7.4%포인트(p) 증가했지만, 13개 진료과 중에서 산부인과만 3.7%p 줄어들었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는 5만원만 내면 2박 3일간 1인 특실과 가족분만실, 무통분만, 산모 고급식, 초음파비 등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저출산 문제가 워낙 심각해서다. 그런 와중에 신경정신과는 17.2%p가 늘었고 심지어 동물병원도 13.8%p나 늘었단다. 거칠게 말하자면 아기는 안 낳는 대신에 반려동물에 공을 들이는,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말이다. 최다 출생수를 기록했던 1960년에 108만 명쯤 태어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연령층인 1971년생이 약 102만 명 태어나서 현재 94만 명쯤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해 30만 명대로 떨어진 출생자 수는 국가 공동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우리보다 먼저 인구절벽에 다다라 고령사회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도 합계출산율이 1.44명은 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는 0.97명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더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할 청년도, 군대 갈 청년도, 세금으로 노인 세대를 부양할 사람도 모두 부족해질 것이다. 그나마 파국을 늦추거나 피해갈 수 있는 요인으로 남북 관계 회복과 경제 교류 같은 변수가 있겠지만, 아직도 대결을 부추기고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 한 그마저도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코 9.37)

원래 이 말씀은 작고 겸손하며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을 돌보라는 뜻인데, 그 작고 겸손한 처지의 약자 중에 태어나야 할 아기들을 포함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태어날 생명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테고, 태어나기 전부터 그 생명의 행복과 불행을 미리 재단하면서 출생의 기회마저 포기하는 사회에 미래와 희망이 있을 수 없다.

결혼과 출생의 당사자가 되는 젊은이들이 출산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인생과 생명을 보는 눈을 달리하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 은총의 산물이며, 모든 생명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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