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

"인생살이와 수행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마라톤에서도 서둘면 일찍 지치고, 그렇다고 너무 여유를 부리면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끈기 있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도달하는 마라톤의 끝 지점처럼 불제자들의 수행이나 인생사도 매한가지다."
대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은 마라톤 예찬론자다. 20세에 출가한 스님은 출가수행의 과정으로 2006년 마라톤에 입문했다. 그동안 승복을 입고 하프 100회, 풀코스 20회 이상 완주했다. 최고기록이 하프는 1시간 47분, 풀코스는 3시간 55분으로 '서브-4' 기록을 갖고 있다. 무박 2일에 걸친 108km 울트라 마라톤에도 도전해 성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님은 도반에서 '마라톤 스님'으로 불린다.
"마라톤은 나에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다가왔어요. 1992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가야산 해인사 소림선원에서 화두 하나를 부여잡고 좌복을 땀으로 적시던 시절이었죠. 선배 스님 한 분이 '혜문 스님! 화두 공부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야! 평생을 두고 해야 할 마라톤인 게지'란 말을 속삭이듯 던지지 않겠서요. 그 순간 화두라는 중압감에서 비롯된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청량한 느낌을 받았어요."

스님은 그 후 걸망을 메고 명산대찰을 돌고 돌아 2006년 뜻을 품고 대구에 상락선원(常樂禪院)이란 이름을 걸고 정착했다. 출가자에게 있어서 은둔은 수행의 과정일 뿐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출가자의 신분으로 육신의 수행을 위해 딱히 할만한 운동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달랑 팬티 한 장 걸치고 운동화만 신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라고 하던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출가한 스님이 무슨 마라톤이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심지어 같이 뛰는 주로에서 다른 마라토너들로부터도 조롱 섞인 말까지 듣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기를 통하여 나름대로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수행에도 정중(靜中)공부와 동중(動中)공부가 있다. 스님은 마라톤을 동적인 수행으로 여기고 민중들과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행이 됐다고 한다.
"인간의 몸뚱이는 내버려 두면 한없이 게을러지고, 다그치면 그만큼 강인해지기 마련이에요. 천성적으로 안정을 추구하여 게을러지는 몸뚱이의 투정에 휘둘리지 말고, 한 번쯤은 극한 상태로 몸뚱이를 내몰아 길들여 보는 것도 삶에 아주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스님은 나이가 60세가 됐다. 마라톤 선수로 뛰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라톤을 경험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단축코스에서 페이스 페트롤 활동을 시작했다. 마라톤 참가자에게 완주의 추억을 심어주는 도우미 역할이다. 기록과 관계 없지만 참가자와 함께 뛰다보면 완주의 기쁨은 남다르다는 것. 스님은 신천둔치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쯤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마라톤 수행에 나선다는 각오다.
이밖에 스님은 소외이웃에 사랑나눔도 하고 있다. 선원 주변 홀몸노인을 모시고 따끈한 곰탕을 끓여 점심봉양을 10년째 실천하고 있다. 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5년 동안 1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상락선원은 2006년 대구 파동에서 12년간 운영하다 작년 12월에 봉덕동으로 이전불사해 불자들의 참선과 명상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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