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반듯한 대통령

입력 2019-02-20 11:34:24 수정 2019-02-20 19:54:41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저는 골목 상인의 아들입니다.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연탄 가게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저도 주말이나 방학 때 어머니와 함께 연탄 리어카를 끌고 배달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힘든 것보다 온몸에 검댕을 묻히고 다니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식에게 일을 시키는 부모님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대화' 행사. 문 대통령은 자신의 어린 시절 연탄 배달 얘기를 꺼내면서 '대통령 말씀'을 시작했다.

대통령 자신도 철없는 어린 시절부터 무시무시한 가난을 겪으면서 커왔는데 자영업·소상공인들도 지금이 몹시 어려운 상황이지만 힘을 내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권면(勸勉)의 의미로 들렸다.

어린 마음에 연탄 검댕이 부끄러웠으면서도 '오죽하면 자식에게 일을 시키겠느냐'는 생각으로 창피한 마음을 다잡으며 부모님을 기꺼이 도왔던 이야기. 이 대목에서도 읽어내릴 수 있듯이 문 대통령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이들은 한결같이 문 대통령을 두고 '반듯한 사람'이라는 평을 한다.

문 대통령과 오랜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나이가 일곱 살이나 많은데도 문 대통령에게 반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을 만큼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반듯함'을 높이 샀다.

김태우 수사관에 이어 신재민 전 사무관까지 나섰던 폭로, 손혜원 의원의 이해충돌 논란,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재판 거래 의혹, 복심(腹心)이라 불리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법정구속까지,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까지 문재인 정부에는 숨 돌릴 틈이 없을 만큼 한꺼번에 악재가 찾아왔다. 하지만 여러 곳의 여론조사기관 조사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좀처럼 하락세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여러 돌발 변수가 급속도로 늘어난 가운데 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국민들과 만나는 대면 접촉 일정을 크게 늘렸다. 대통령의 개인기, 이른바 '반듯한 대통령'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직접 보이면서 위기를 넘어서려 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살펴봐야 할 보고서가 엄청나게 많은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주는 물론 이번 주에도 매일

외부에 공개되는 일정을 소화해낼 만큼 강행군을 하고 있다. 하루에 2개 이상의 공개 일정을 진행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듯한 대통령은 함정을 만나고 말았다. 지난 13일 고향 부산에서였다.

문 대통령이 이날 부산을 찾아 내놓은 이른바 '가덕도 신공항 시사' 발언은 영남권 5개 시·도가 합의해 정부 국책사업으로 공식 채택된 '김해공항 확장'을 대통령이 뒤집는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영남권은 혼란의 소용돌이로 또다시 빠져들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는 권력이 제한적이지 않다면 어떠한 지배적 권위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보다 더 위험해진다고 경고했다. 통치자의 권력은 일시적으로 위임받은 것일 뿐, 무적의 칼과 방패는 통치자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얘기다.

주권자인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에게 신용카드를 맡겼지만 한도 무제한 카드를 준 적이 없다. 반듯한 문 대통령이 이를 몰랐단 말인가? 로크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 생겼단 말인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