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대보사우나 화재…작년 두 차례 안전점검, 노후한 4층만 빠졌다

입력 2019-02-20 06:30:00

오래된 소방법 탓 소방시설 설치 의무 없어, 국가안전대진단 땐 바로 위층 최신 사우나만 점검

19일 오전 대구 중구 포정동 대보사우나 건물에서 불이 나 2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과 경찰이 화재로 아수라장이 된 4층 남자목욕탕 발화추정 지점에서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9일 오전 대구 중구 포정동 대보사우나 건물에서 불이 나 2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과 경찰이 화재로 아수라장이 된 4층 남자목욕탕 발화추정 지점에서 합동감식을 벌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9일 83명의 사상자를 낳은 대구 중구 대보사우나 화재 사고는 행정당국과 소유주의 무관심이 함께 낳은 인재(人災)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구시와 중구청, 대구소방안전본부 등은 국가안전대진단 등 합동점검 때 대보사우나를 쏙 빼놓은 채 비교적 최근 지은 아래층 사우나에 대해서만 점검을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사고 건물은 일찌감치 소방·건축 개보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으나 소유주들이 후속 조치에 무관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중구 포정동 한 사우나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19일 오후 4층 남자목욕탕 발화추정지점에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옛 소방법 적용, 경보 오작동, 합동점검 제외까지

19일 대구시와 중구청, 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불이 난 대보빌딩은 1977년 건축허가를 받아 1980년 7월 사용승인을 받은 39년 된 노후 건물이다. 지하 2층, 지상 7층, 옥탑 2층에 연면적 2만5천90여㎡ 규모로 1·2층에는 식당 등 상가가, 3·4층에는 목욕탕과 찜질방, 헬스장 등이 들어섰으며 5층 위로는 107가구 규모 아파트가 있다. 해당 건물의 안전등급(A~E)은 'C'로 보통 단계의 안전 수준이라고 중구청은 설명했다.

불이 난 4층 대보사우나는 1980년 9월 당시 목욕장(현재 근린생활시설에 포함)으로 영업허가를 받다 보니 당시 건축·소방법 등에 따라 스프링클러, 방화문, 제연설비 등 소방시설 설치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건축 당시 백화점으로 영업 허가를 받았던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3층은 현재 사우나·찜질방)까지는 1976년 당시 건축·소방법에 따라 '6천㎡ 이상 백화점 및 판매시설'로 분류돼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대보빌딩에 있던 자동 화재경보설비마저도 건물 노후화 영향으로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중구 포정동 한 사우나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19일 오후 4층 남자목욕탕 발화추정지점에서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실제 대구소방안전본부는 해당 건물에 대해 지난해 7월 17~18일 이틀간 소방시설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한 결과, 방송·경보설비의 오작동이 잦은 등 불량한 것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중부소방서는 이후 확인 점검에 나섰지만 해당 설비들이 정상 작동한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당시 일부 아파트 주민이 "화재 경보음을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 점으로 미뤄볼 때 오작동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길이나 연기가 위층으로 번졌다면 아파트 주민이 제때 대피하지 못하는 등 더 큰 인명피해를 낳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합동점검 등으로 재난의 불씨를 잡을 기회가 수차례 있었지만 행정당국의 무관심 탓에 대보빌딩은 매번 점검 대상에서 비껴갔다.

중부소방서는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를 계기로 지난해 초 실시한 지역 내 복합스파시설 합동안전점검 때 대보사우나를 점검 대상에서 제외한 채 바로 아래층 향촌하와이 사우나·찜질방에 대해서만 점검을 했다. 대보사우나는 일반 대중목욕탕, 향촌사우나는 복합스파시설로 각각 등록됐다는 이유다. 향촌사우나는 2004년 영업허가를 받아 비교적 엄격한 소방법을 적용받은 곳이다.

대구시와 중구청도 지역 내 안전취약지점 1만2천626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정안전부 주관 국가안전대진단 당시에도 향촌하와이만 점검 대상에 포함해 3차례에 걸쳐 합동·자체점검을 실시했다. 반면 노후한 대보사우나는 점검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한 소방 전문가는 "국가안전대진단은 위험 건물을 우선 점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최신 소방법을 적용받아 소방설비를 대폭 확충한 곳은 점검하고, 노후돼 위험한 건물은 제외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민들 "건물 개보수 필요" 지적에도 손 놔

건물 노후화를 매일같이 지켜보던 건물 입주민과 입점 상인들도 막상 건물 유지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구청에 따르면 대보빌딩은 특정 건물주 없이 건물에 입주한 주민과 상인들이 스스로 관리사무소를 차려 소방안전관리자 등 직원을 고용하고 입주자대표회의, 상가번영회를 꾸려 운영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각 단체는 관리비·회비 수금 등을 제외하면 건물 관리 등에는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최근 3차례에 걸쳐 2년마다 해당 건물의 유지정기점검을 담당한 한 민간 건축사사무소는 대보빌딩을 처음 점검한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건물 외관 시멘트 탈락 등 건물 노화가 염려되고 배수 등 정비가 시급히 필요하다. 소방 및 전기, 통신, 공조시설 등 많은 부분에 관리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지적했으나 주민과 상인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해당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 대부분이 연세가 많고 영세해서인지 건물 관리에 큰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주변에 경상감영공원 등 공원과 문화재가 있어 개발제한이 있다 보니 유일하다시피 한 대안인 재건축·재개발마저도 사업성이 낮아 관심을 보이는 건설사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건물 주민들은 "오래된 건물이라서 건물을 개보수할 엄두를 못 냈다"고 말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