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팔공산의 다양한 문화적 자원 중에서도 종교적 문화의 다양성은 팔공산을 대표하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팔공산은 통일신라시대 중악으로서 왕이 천신께 제사를 지내온 이래 홍익인간을 구현하려는 선도(仙道)문화와 도교적 색채가 곳곳에 배어 있다.
천왕봉(비로봉) 서편에 위치하는 마애약사여래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에는 연화대좌 아래에 쌍룡(청룡과 황룡)이 조각돼 있다. 이것은 불교가 이 땅에 자리 잡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우리의 토속신앙적 색채가 혼합돼 나타나는 것으로 팔공산이 토속신앙지의 메카였음을 잘 알 수 있다.
김유신 장군 설화의 배경이 되는 명마산의 용왕당을 비롯하여 기생바위와 천왕나무(소나무), 능성동 내릿골의 당산, 동화사 부도암 주변 기자석(祈子石) 등지에는 지금도 많은 무속인들이 찾는다. 또한 마을 당제와 동제의 존재는 팔공산 일대의 토속신앙이 여전히 전승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당제와 동제는 토속신앙의 요소에 불교적, 유교적, 도교적 의례가 혼합된 방식을 보이며 나무, 돌탑, 돌무더기, 솟대, 선돌 등을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
팔공산에서 토속신앙과 도교에 뒤이어 나타나는 종교 문화적 색채는 불교문화이다. 신라의 불국토라 불릴 정도로 불교 유적과 문화재가 많은 팔공산은 신라시대 이래 역대의 여러 왕들과 불교적 인연을 가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국보 2점, 보물 12점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을 품고 있는 팔공산에는 남사면의 동화사, 북사면의 은해사 등 조계종 본사가 2곳이나 소재하고 있어 현재도 불교적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로 유명세를 더하는 갓바위(보물 제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의 존재는 팔공산이 왜 불교의 성지인가를 잘 보여준다.
신라시대 이래 융성하게 발전해 오던 불교문화는 유교적 사상이 국가의 이념으로 설정되었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침체의 길로 들어선다. 팔공산의 유교적 문화 색채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을 비롯해 군위의 양산서원, 동구 용수동의 농연서당과 농연구곡, 영천의 귀천서원, 동화천의 문암구곡 존재는 팔공산의 유학적 사상과 이념을 풍성하게 해준다. 특히 명유들의 팔공산 산행기나 유람기는 팔공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유려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어 팔공산의 멋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는 유·불·선과는 확연히 다른 가톨릭이 서구로부터 유입되어 오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유교적 이념이 강했던 경북에서는 1800년대 유교적 이념과 대립되던 가톨릭 종교의 보급으로 인해 가톨릭이 배척당하던 시기로, 많은 순교자가 생겨났다. 특히 팔공산 한티에 위치한 한티성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톨릭 성지다. 이처럼 팔공산에는 우리의 토속신앙을 비롯해 유·불·선 그리고 가톨릭이 공존하면서도 조화로움을 추구해나가는 특이한 장소성을 보이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곳이다.
21세기 혼돈의 시대에 각각 다른 종교적 이념을 가지는 다양한 종교가 한 지역에 온전히 둥지를 틀고 상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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