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가버나움

입력 2019-02-18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최근 개봉 영화 '가버나움'의 포스터 카피는 사뭇 충격적이다.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죄'로 친부모를 고소해 법정에 세우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열두 살쯤 된 시리아 난민 소년이다. 출생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학교도 못 다니며 일만 하면서 힘겹게 살아왔다.

막 초경을 시작한 여동생이 동네 슈퍼 주인에게 팔려가는 것을 보고 가출하지만 삶은 여전히 처연했다. 임신한 여동생이 병원도 못 간 채 하혈을 하다가 죽자 슈퍼 주인을 찔러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때 면회를 온 엄마는 신의 축복으로 또 동생이 생겼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리고 재판정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가버나움'은 성경에 등장하는 저주받은 마을 이름이다. 프랑스어로는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상태'를 뜻하며, 문학적으로는 '혼돈과 기적'을 의미한다. 레바논 출신의 여성 감독 나딘 라바키는 왜 '가버나움'을 영화 제목으로 썼을까. 본능에만 충실한 무책임한 부모 때문에 호적도 없이 투명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아이들….

중국에서는 30년간 강행한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출생신고 없이 유령처럼 살아온 사람이 1천3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학교와 병원에 갈 수 없는 것은 물론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직장을 가질 수도 없어 한 동네에만 있는 듯 없는 듯 머물러야 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자 그제야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고 이들에 대한 호적을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가족관계등록법상 부모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우연히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국가가 출생 사실을 일일이 파악할 수가 없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부모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투명인간방지법'이 제기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 낳으라고 출산장려금을 쏟아붓는 세태에, 태어나고도 유령처럼 살아가는 인권 사각지대가 있다면 우리 사회 또한 '가버나움'의 예외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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