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세계화와 감염병

입력 2019-02-12 08:33:44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눈병에 걸렸다. 일요일 아침에 눈이 간지럽고 눈곱이 끼기 시작하더니 결막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수 년에 한 번 정도 있는 일이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대구에 홍역이 돌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홍역의 초기 증상에 기침, 코감기와 함께 결막염이 포함되어 있다. 증상은 결막염 밖에 없어 가능성은 떨어졌지만, 완전히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더욱이 금요일에 홍역 환자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월요일부터 의료진을 대상으로 홍역 항체 유무 검사가 있었다. 다행히 혈액검사에서는 홍역 항체가 있는 것으로 나왔고 목요일부터는 눈병도 거의 호전되었다. 손도 열심히 씻고, 대인 접촉을 극도로 삼가해서 다행히 눈병을 옮긴 경우도 없이 잘 지나갔다.

개인으로는 갑작스런 눈병과 홍역 뉴스가 적절히 섞인 해프닝이었지만, 홍역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분위기이다. 예방접종 시행 후 홍역은 거의 잊혀진 질병이 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해외여행이 감염전파의 변수로 부각하고 있다.

감염병 관리는 국가주요지표 중의 하나이고, 우리나라도 꾸준히 지표의 개선을 이루었다. 수많은 보건의료인이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해왔겠지만, 영상진단 역시 많은 임무를 수행해 왔다. 1964년 대한 X선 의료사업협회가 영상의학과 의사를 중심으로 설립되었고, 결핵 퇴치 지원사업을 오랜 기간 해왔다. 중장년층은 X선 기계를 실은 버스가 학교를 방문하여 흉부사진을 촬영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시 X선 필름은 상당히 고가였다. 그래서 흉부의 X선 투영상을 보통 카메라로 간접 촬영하는 형태로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결핵 검진을 시행하였다. 사진의 크기가 작고 양은 많아 사진의 판독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2명의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판독하여 나름 정확도를 높이려고 하였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기술력도 발전함에 따라 X선 간접촬영의 경험은 원로 영상의학과 의사의 기억 속으로 묻히게 되었고 디지털 영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조기 진단과 치료로 발생률과 사망률은 급격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77명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여전히 1위이다. 회원국 평균이 11.7명임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에는 발생률 감소 추세가 꺾이거나 조사 기간에 따라서는 오히려 증가세를 보이기도 한다.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면역역이 떨어진 환자수의 증가, 약제 내성 등 다양한 이유가 제시되었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탈북자와의 접촉 혹은 직접적인 북한 방문 증가도 원인의 하나로 추정되었다. 필리핀이나 북한 등 인접 국가의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5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해외변수도 감염관리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감염병의 증가는 국제화에 따른 필연적인 그림자이다. 사막의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퍼져 나간 것이 중동호흡기 증후군이였고, 의과대학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뎅기열이 한국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홍역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퇴치의 길을 가던 결핵이 다시 세를 얻기도 한다. 의과대학 시절이나, 전공의 시절 이런 감염병은 한국에 없으니 공부 안 해도 된다던 바이러스성 감염병이 최근에는 MRI에 찍혀서 눈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해외 여행의 빈도가 증가하는 만큼이나, 감염의 위험도 높아진다. 감염병이 급격히 번지지 않는 한 여행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이제 손 씻기, 가급적 사람이 많은 곳 피하기,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기와 같은 기본적인 감염 예방 수칙을 습관화 하는 것도 해외여행 준비 필수품이 되었다.

이희중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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