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의 아이돌 탐구생활] 명절 단골메뉴 방송사 '아이돌 육상 선수권 대회'

입력 2019-02-08 19:30:00 수정 2019-02-08 19:51:42

아이돌도 누군가의 아들·딸…“설에는 쉬게 해주자”

2019 아이돌스타 육상 볼링 양궁 리듬체조 승부차기 선수권대회 로고. 차라리
2019 아이돌스타 육상 볼링 양궁 리듬체조 승부차기 선수권대회 로고. 차라리 '아이돌 체육대회'라고 간단히 붙이면 될 프로그램 이름이지만 '아육대'라는 줄임말이 입에 붙어서인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네이밍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MBC 제공

올해도 어김없이 MBC에서는 '아이돌 육상 선수권 대회', 속칭 '아육대'가 열렸다. 2010년 추석에 처음으로 편성된 이후 반응이 좋았던 덕분이었는지 브라질 월드컵이 있었던 2014년 추석과 방송국의 파업이 있었던 2017년 추석을 제외하고는 늘 편성이 됐다. 마치 일반 기업체가 연례행사처럼 여는 체육대회다.

아육대는 사실 아이돌들에게나 팬들에게나 '계륵' 같은 프로그램이다. 아이돌의 경우 경기 도중 부상의 위험성이 높고, 여기서 부상하면 이후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 특출난 기량을 보이면 자신뿐만 아니라 팀이 주목을 받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빅스의 레오가 2013년 추석 아육대에서 풋살 경기 때 선보인 드리블과 턴이 화제가 돼 남자 팬을 모으는 계기가 됐지만, 레오는 이날 경기에서 부상을 입어 이후 활동 무대에선 앉아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우주소녀 은서가 리듬체조를 선보이고 있다.
우주소녀 은서가 리듬체조를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방송국을 골라서 무대를 할 정도로 톱클래스 아이돌이 아닌 다음에야 지상파 방송인 MBC의 출전 요구를 뿌리치는 건 상식적으로 힘든 일이다. 지금은 '월드 클래스'인 방탄소년단의 경우 2017년까지는 아육대에 출연해서 계주 1등도 한 바 있다. 게다가 아육대 라인업도 점점 방송국이 섭외하기 쉽고 '갑질'하기 쉬운 중소기획사 아이돌 위주로 채워지고 있기도 하다.

팬들은 밤새 스케줄을 소화한 뒤 지친 몸으로 운동까지 해야 하는 아이돌의 모습을 보는 게 안쓰럽기도 하지만, 아이돌을 그나마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과 아이돌들이 응원 온 팬들에게 직접 도시락을 나눠주는 이른바 '역조공'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방청 신청 경쟁률은 높다.

어느 순간 아육대를 보면서 좀 짠해지는 측면이 있다. 비록 명절 한 달 전에 녹화하니까 당장 명절에 고생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이 때문에 결국 명절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는 청춘들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꼭 아육대 때문이 아니더라도 명절이 되면 아이돌들은 SNS를 통해 명절 인사를 남기거나 명절 잘 보내라는 메시지를 짧게라도 올린다. 하지만 정작 아이돌들이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는 듣기가 참 힘들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심지어 미성년자인 경우도 있는데),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참 '쇼 비즈니스'가 냉정하다는 느낌도 갖게 된다.

아이돌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인데 명절에도 일에 치여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건 아이돌 덕후로서 가슴이 아프다. 마치 어슐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너무나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희생으로 우리가 즐거움을 얻는 것 같아서 아육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차라리 아육대보다는 가족과 함께 명절을 행복하게 보내는 사진이 SNS에 올라오는 게 팬으로서는 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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