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징비력/ 이권효 지음/ 나남 펴냄

입력 2018-12-13 11:35:58 수정 2018-12-13 16:34:02

사중구생=죽을 상황에서 살아날 길을 찾는 의지

류성룡 징비록
류성룡 징비록

서애 류성룡의 이야기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사중구생'(死中求生). 즉, 죽을 상황에서 살아날 길을 찾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첫 페이지는 석영 최광수 화백이 그린 류성룡의 영정(1988년 정부 표준)을 소개한다. 다음 페이지부터는 서애의 출생지(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 종택), 원지정사와 연좌루(35세에 안동 하회마을에 지은 공부방과 정자), 옥연서당(서애의 구심점 같은 공간, 45세에 완성한 서당으로 징비록을 저술한 곳), 병산서원(서애가 31세 때 안동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문중 교육공간)을 옮긴 곳), 농환재(농환초가) 터 서애 유적비(서애가 생을 마친 풍산읍 서미리 부근으로 학가산 자락의 외딴 곳), 충효당(서애 종택으로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서애 류성룡의 정부 표준 영정
서애 류성룡의 정부 표준 영정

머리말 '징비, 삶을 지키는 바탕'의 글에서는 '징비'(懲毖)라는 두 글자에 대해 해설로 출발한다. '혼날 징, 삼갈 비' 자를 쓴다.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되풀이하지 않도록 삼가라'는 뜻이다.

지은이는 일반적 의미의 '징비'라는 말에 더해, 서애가 말한 '징비'에는 단어 풀이의 의미를 뛰어넘는 고차원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역설한다. 징비가 보통명사라면 서애의 징비는 고유명사인 셈이다. 서애의 징비에 담긴 참 뜻을 파악한다면, '정비정신을 되새기며 계승하자' 또는 '징비록의 교훈을 실천하자'와 같은 막연한 주장을 넘어서야 한다. 대신 '징비의 득인(得人)이 필요하다' 또는 '징비의 진심(盡心)을 발휘해야 한다'와 같은 주장이 나와야 한다.

서애의 삶을 잠시 돌아보자. 그는 57세이던 1598년 무술년 10월에 영의정 직위가 해제되고, 다음달 삭탈관직되면서 죄인 신분이 됐다. 서애는 곧 고향인 안동 하회로 돌아가, '징비록'을 저술하는 등 8년을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420년이 지났지만, 징비록은 한마디도 버릴 것이 없는 꽉 차고 절실한 말로 후세에 이어지고 있다.

서애가 임진왜란 회고록
서애가 임진왜란 회고록 '징비록'을 집필한 옥연정사

서애는 우리나라 땅을 '하늘처럼 굳세고 정결하다'는 뜻에서 '건정지'(乾淨地)라고 표현했다. 이 땅에 대해 이토록 뭉클한 한마디에는 서애의 징비력이 스며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징비록에 나타난 아쉬움 점도 지적한다. 평양을 비롯해 숙천, 순안, 영변, 박천, 안주, 정주, 의주 등 임진왜란 당시 서애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던 평안도 일대를 살펴보지 못한 점이다. 제주도에서 압록강까지 산재한 건정지에 류성룡 징비력이 널리 공유되면, 훗날 평안도 일대를 답사하면서 서애를 만날 수도 있다.

한반도는 바야흐로 대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세계 양대 강국(G2)인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 속에서 북한의 핵문제가 뇌관이 되어 있으며, 남한의 운명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남북 통일문제, 세대갈등, 빈부 양극화, 정치혼란 등 격동하는 한국사회에 산적한 과제들을 풀어가는데 있어, 서애 징비정신에서 배울 점들을 넌지시 던지고 있다.

이 책의 차례는 ▷제1부 서애의 삶을 관통하는 힘, 징비력 ▷제2부 징비력의 10가지 요소(공분, 반구, 실질, 득인, 득심, 진심, 원려, 생민, 수신, 초연) ▷맺음말 징비와 공경, 일취월장의 길로 구성돼 있다.

지은이 이권효 박사는 "서애는 징비록을 남겼다. 이는 반성문이자 회고록이다. 나는 서애가 회고록을 통해 진정 하고 싶었던 말, 즉 징비의 실질적인 힘과 에너지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이 점이 내 책의 핵심이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서애의 징비록을 바탕으로 규정한 '징비력 10가지 요소'는 이 책 제2부에 다음과 같이 정리 돼 있다.

#1.공분=삶을 파괴하는 침략전쟁에 대한 강렬한 분노. #2.반구=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냉철하게 반성하며 개선. #3.실질=현실을 직시하면서 실용적으로 문제를 해결. #4.득인=오직 능력을 기준으로 임무의 적임자를 구함. #5.득심=어려움을 이겨내는 근본적인 힘으로서 민심. #6.진심=각자 맡은 일에 한결같이 정성을 쏟는 자세. #7.원려=앞날을 준비하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냄. #8.생민=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보듬고 지키는 노력. #9.수신=올바른 인격과 세상을 추구하는 주체적인 공부. 10.초연=불완전한 현실에 유연하게 맞서고 넘어서는 정서.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징비'라는 말의 뜻과 가치를 서애의 삶을 바탕으로 바르게 세우려는 뜻에서 시도하고 있다. 징비는 반성과 성찰을 넘어, 현실을 개선하고 미래의 희망을 가꾸는 적극적 의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서애가 선조 임금에게 아뢴 사중구생의 의지를 소개한다. "지금 나라의 형편은 나날이 급박합니다. 우리 처지에서는 마땅히 충분히 조치하여 죽을 상황에서 살아날 길을 찾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앞으로 닥칠 일은 차마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중구생'은 서애의 징비력에 한결같이 흐르는 강력한 의지다.

지은이 이권효 박사는 24년 동안 일간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경남 남해 태생으로 경북대 철학과를 거쳐 영남대 대학원에서 중국 명대 유학자 탁오 이지(卓吾 李贄)의 분서(焚書) 연구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 타불라라사칼리지 특임교수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432쪽, 2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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