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가 뇌신경 공격하는 질환…진단 늦어져 병세 악화돼
치료제는 대부분 건강보험 비급여…치료비 4천만원 쌓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어요."
휠체어에 앉아 힘없이 바닥을 응시하던 권동원(가명·23) 씨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권 씨는 면역세포가 뇌신경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성 뇌염으로 투병 중이다. 두통이 점점 심해지고 발작, 정신이상, 심폐기능을 포함한 운동기능 이상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병이 깊어질수록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등 퇴행성 증상도 나타난다. 권 씨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고, '아픈 게 싫다'며 떼를 쓰며 치과 치료를 거부할 정도로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 면역세포가 뇌신경 공격하는 '자가면역성 뇌염'
평범한 20대였던 권 씨가 건강에 이상을 느낀 건 7개월 전이었다. 어머니 이효주(가명·50) 씨는 "아들이 똑바로 걷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걷기 시작하더니 헛것을 보는 등 정신분열증 의심 증상을 보여 신경정신과에 입원했다"고 했다.
1주일간 약물치료를 받으며 증상이 호전돼 퇴원했지만, 나흘 만에 다시 고열과 발작증세가 나타났다. 이후 4개월 가까이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었다.
권 씨는 심하게 넘어져 오른쪽 어깨가 골절됐고, 위독한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10주 이상 치료를 받기도 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기관 절개로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엉덩이엔 손바닥만한 욕창이 생겨 피부 이식 수술도 받았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듯한 상황에서 희망을 본 것은 지난 9월. 이 씨는 "옮긴 병원에서 척수액을 뽑아 검사를 하더니 자가면역성 뇌염 진단을 해줬다. 그제야 자가면역치료제를 맞으며 발작도 크게 줄었고 신체기능과 인지능력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권 씨는 지난달부터 재활전문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 회복 더디고 치료비 걱정도 커
병명은 진단이 됐지만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여전히 발목 관절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오른쪽 발가락이 자꾸 오그라들어 보조기구를 찬다. 어깨 위로 손을 들어 올릴 수 없고, 욕창도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아 움직일 때 늘 주의해야 한다.
앞으로 치료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점도 두렵다. 이 씨는 "증상이 호전되고 있지만 요즘은 다소 정체되는 느낌"이라며 "약물 치료가 언제까지 효과가 있을지 모르는데다, 약물 내성으로 쓸 수 있는 치료제가 사라지진 않을 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미 4천만원이 넘게 쌓인 치료비도 걱정거리다. 부동산공인중개사무소에서 보조인력으로 일하던 이 씨는 손목터널증후군과 척추관협착증 때문에 6개월 전 일을 그만뒀다. 그나마 매달 200만원 정도를 벌어 치료비를 보태던 권 씨의 누나도 얼마 전 회사가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잃었다.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준비 중이지만, 권 씨가 아직 장애등급을 받지 못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자가면역치료제와 재활치료는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앞으로 치료비 부담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조차 어렵다.
"아들이 죽을까봐 걱정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오히려 감사할 정도입니다. 빨리 아들이 회복해서 꿈을 다시 찾으면 좋겠습니다." 이 씨가 아들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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