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재로 '세계유산 그랜드슬램' 달성
2. 유네스코와 세계문화유산 보존
3. 하회별신굿탈놀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잰걸음
4. 하회별신굿탈놀이, 가장 완벽한 민족문화 정수
5. 하회탈·하회별신굿탈놀이, 한국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6. 한국의 탈춤-산대놀이 등 중부 이북 탈춤
7. 한국의 탈춤-야류놀이 등 중부 이남 탈춤
8. 지구촌의 탈과 탈춤-아시아의 탈춤
▶9. 지구촌의 탈과 탈춤-한·중·일 탈춤
10. 한국의 탈춤, 인류무형문화유산을 위한 제언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탈춤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마을주민들이 전승하던 탈춤,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탈춤이 있다.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던 탈춤은 주로 지역마다 향촌 제사 활동에서 연행된 것으로, 자생적이고 향토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전문 연희자들이 전승해오던 탈춤은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해 성립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보편성과 함께 자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한·중·일 탈춤의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각국 탈춤의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 나라의 독자성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탈춤, 7세기경부터 등장하기 시작
한국의 탈춤에는 네 가지가 있다. '산대'(山臺), '해서'(海西), '야류'(野遊), '오광대'(五廣大) 등이다. 각종 문헌상에 나타난 한국 탈춤의 최초 놀이는 '삼국사기'에서 전해오는 최치원의 '향악오수'(鄕樂五首) 중 '대면'(大面)·'속독'(束毒)·'산예'(狻猊) 등으로 7세기경에 등장했다.
한국의 탈춤은 크게 '마을굿 놀이 계통'과 '본산대놀이 계통'으로 나누어진다. 마을굿 놀이 경우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릉관노가면극처럼 향촌 제사 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해 발전해왔다. 한국의 자생적 연희 흔적은 이미 상고시대 암각화와 국중대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산대놀이 계통 경우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산악, 백희, 그리고 상고시대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된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전경욱 고려대 교수는 지난 2013년 이마코총회 학술대회에서 '아시아의 가면극'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본산대놀이 경우 대부분 전문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됐지만, 여기서 전파된 별산대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료, 무속인 등 지역 주민들에 의해 전승됐다"고 했다.

◆중국의 탈춤, 나례의 연희 영향으로 '나희'
중국에서는 가면극, 탈춤을 '나희'(儺戱)라고 부른다. 중국 탈춤 역사에서 탈, 가면의 시작은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가면극, 탈춤이 생겨났기 때문에 '나희'라 부른다.
나희는 중국 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오랜 역사와 다양한 유형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중국 전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희극의 형태다.
나희는 종교 제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일반적인 전통희극은 일상생활에서 동떨어진 예술적, 교육적 효과만을 함유, 일상생활에 없는 즐거움을 얻는 데 그쳐야 했다.
하지만, 나희는 특정 시간대나 종교적인 이유로 신성시해온 민속의 하나로, 연례적 행사의 양상을 띤다. 이 때문에 나희는 많은 관중과 조직을 필요로 했다.
나희를 부르는 것도 지역마다 달랐다. 특정 지방에서는 무당, 즉 '단공'(端公)의 이름을 따서 나희를 '단공극'으로 부른다. 또 다른 지방에서는 '향화'(鄕火)의 이름을 따 '향화극'으로 불렀다.
비슷한 맥락에서 광시 지방의 '시공 극', 후난과 쓰촨의 '다오공 극', 마오현과 리현의 시비 극' 등이 있다. 특정 지방에서는 제단의 이름에 따라 나희가 이름 지어 지기도 했다.
구이저우, 쓰촨, 후난, 후베이에서는 제단을 '나당'으로 지칭하기 때문에 나희를 '나당희'이라 했으며, 이러한 형태는 다오젠 거라오 자치구의 나당희, 투쟈족의 나당희, 데이쟝과 시난 등의 나당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나희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민속 희극의 성향을 띠는 '민간 나'이다. 대부분의 나희가 여기에 포함된다. 또 하나는 '궁정 나'로, 궁궐에서 시행되는 나희를 뜻한다.
'군 나'는 전쟁이 시작하기 전 제례, 연습, 사기고취 등의 목적으로 시행되던 나희를 뜻한다. 군나의 예로는 구이저우의 지희를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사원 나', 즉 사찰에서 시행되던 나희가 있다. 이는 카이위안 수도원에서 놀아졌던 다양한 내용의 희극과 장족 자치구의 연희를 포함한다.

◆일본의 탈춤, 노래·반주·추임새와 작은 몸짓의 '노오'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것과 서민층에 의한 것이 있다. 지배계급에 의해 생겨났던 가면극은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됐기 때문에 예술적 경향이 뚜렷하다. 기가쿠멘(伎樂面), 부가쿠멘(舞樂面), 교도멘(行道面), 노멘(能面), 교겐멘(狂言面) 등이다.
서민들에 의해 연희되거나 전승된 가면극으로는 사루가쿠멘(猿樂面), 가구라멘(神樂面), 민간의 축제 가면, 신앙가면 등으로 향토색이 짙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가면극으로 지난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노오가쿠'(能樂·가면음악)가 있다. 노오가쿠는 '노오'(能), '교겐'(狂言), '시키삼반'(式三番)이라는 3가지 무대예술을 아우르는 말이다.
'노오'는 노래와 추임새를 반주로 해, 연주자가 가면을 쓰고 연주하고, 아주 간소한 작은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극 형태다.
노오가쿠는 고대 농경사회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헤이안시대가 되면서 사찰에 속하게 되고 전문직이 생겨나 전승됐다. 무로마치시대에는 막부의 비호 아래서 발전했다.
'노오'는 에도시대까지 '사루가쿠'라고 불리며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에도막부 붕괴 후, 존폐의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에 옛 귀족들이 '노우가쿠사'(能樂社)를 설립하고 계승했다.
이를 계기로 사루가쿠는 노오가쿠로 불리게 됐다. 이후, 제2차세계대전에 의한 화재로 많은 '노오'(能) 무대가 소실됐으며, 남은 노오 무대에서 여러 전승 단체들이 공동연습하면서 연기력 향상과 체계적 전승이 가능했다.
'노오'의 모태로 인정받는 '사루가쿠'는 대륙으로부터 전해진 산가쿠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원래 산가쿠의 핵심은 곡예와 마술이었지만 헤이안 시대 말기가 되면서 우스꽝스러운 흉내 내기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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