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아니다. 문화공동체다…사계절 함께하는 이웃사촌 "이상적 커뮤니티"

입력 2018-10-23 10:02:57 수정 2018-10-23 10:05:15

매화제 풍경. 이미나 제공
매화제 풍경. 이미나 제공

푸른 잔디 광장에는 음식과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나지막한 무대에선 흥겨운 공연이 한창이다. 일견 두류공원 야당을 떠올리는 이곳은, 놀랍게도 대구 북구 매천동 매천화성드림파크 아파트 축제 현장이다.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있기에 이들은 서로에게 이토록 정다울까. 기분 좋은 궁금증을 품은 채 매천화성드림파크를 들여다 봤다.

◆주민을 넘어 북구민 축제로…매화제

아파트 명칭에서 이름 딴 '매화제'는 매년 9월 초 잔디광장에서 열린다. '7080 라이브 음악, 자선 바자회, 가을 버스킹' 등 주민 의견을 반영해 축제 주제를 정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그 의미와 재미가 풍성해진다.

축젯날이면 찾아오는 손님들로 아파트는 물론, 매천동 일대가 시끌벅적하다. 내년이면 9회를 맞는 매화제는, 주민 축제에서 명실상부 북구를 대표하는 축제로 우뚝 섰다. 주민에겐 통닭과 맥주가 무료이며, 부녀회에서 준비하는 음식은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수익금 일부는 매년 연말 불우이웃 성금으로 쓰인다.

삼삼오오 잔디광장으로 모여드는 주민들. 이미나 제공
삼삼오오 잔디광장으로 모여드는 주민들. 이미나 제공

◆재능기부로 활짝 핀 사랑방

햇살 좋은 오후, 드림 카페엔 커피 향이 그윽하고, 그 옆 도서관에선 책장 넘기는 소리가 고요히 흐른다. 도서관과 카페, 다목적실과 운동 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는 지하1∙2층은 주민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카페에선 뜨개질과 마크라메, 친환경 세제 만들기 등 다양한 문화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는 모두 '주민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진다. 투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카페는 초기 입주민들이 그릇과 식기류, 소품 등 십시일반 가져와 보듬고 꾸몄다고.

애정과 손때 묻은 공간이라면, 2014년 문을 연 매화도서관도 예외가 아니다. 직원들이 손수 망치와 못을 박아가며 공사했고, 주민들은 4천 권에 달하는 책을 기증해주었다. 지금은 보유도서가 8천 권에 이르고 매달 희망 신간 도서를 사 선보일 만큼, 실속 있는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잔디공원에서 열린 뜨개질 전시회. 이미나 제공.
잔디공원에서 열린 뜨개질 전시회. 이미나 제공.
도서관에서 열린 상상력 그리기 대회. 이미나 제공.
도서관에서 열린 상상력 그리기 대회. 이미나 제공.

◆사계절 함께하는 이웃사촌

가정의 달 5월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연극을 관람하고, 더위가 기승인 8월엔 경비원과 어르신을 초청해 삼계탕과 수박을 대접한다. 가을바람 선선한 10월이면 이곳저곳 명산 찾아 주민 나들이를 떠나고, 한 해와 작별하는 12월엔 크리스마스 축제로 이웃 모두 하나가 된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꽃처럼, 아파트 풍경도 사계절만큼 이채롭다.

부녀회에서 준비한 복달임 행사. 이미나 제공
부녀회에서 준비한 복달임 행사. 이미나 제공
이웃과 함께 떠나는 가을 나들이. 이미나 제공
이웃과 함께 떠나는 가을 나들이. 이미나 제공

마침 드림 카페에서 부녀회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어,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아파트를 대표하는 특징을 한 가지 꼽는다면요?

"인사하는 문화요. 신기하게, 처음부터 그랬어요. 엘리베이터 안이든 산책로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인사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얼굴을 익히고, 자연스레 안부를 묻게 됐죠. 어느 나라 어떤 문화에서든 인사가 기본이잖아요. 기본을 잘 지키다 보니, 서로 마음을 열었고 지금 같은 끈끈한 공동체가 될 수 있었죠." -부녀회 김경숙 총무

▷주민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아파트 모습이 있다면요?

"음, '거기 참 사람 냄새 나더라'로 회자되는 아파트였으면 좋겠어요. 도시 전체가 고층건물로 빽빽하다 보니, 어느 곳에서도 사람 냄새 맡기 참 힘든 요즘이잖아요. 그래도 집에서만큼은 온기를 잃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옛 시골 마을처럼 옆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고 필요하면 품앗이도 할 수 있는, 깊은 정서를 나누는 그런 공간이기를 바라요. 다행히, 그 바람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네요."- 부녀회장 허영아

부녀회 임원들. 이미나 제공
부녀회 임원들. 이미나 제공

암흑이 짙은 검은 하늘만 바라보다 별빛 한 자락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단절과 고립, 개인주의를 상징하는 아파트에도 교제와 나눔이 오가고 인정과 사랑이 꽃필 수 있음을, 오늘에야 확인했다. 사람보다 기계와 대화할 일이 점점 더 늘어나는 세상, 사람은 '그래도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이곳은 증명해주었다. 오늘 찾은 이곳이 더욱 특별하고 반가운 이유다. 퇴근길, 아파트에서 만날 낯선 주민에게 인사를 건네 봐야겠다. 이웃이 되어 봐야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매일신문 디지털시민기자 이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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