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수업으로 '진짜 행복' 찾는 초등학교들

입력 2018-10-22 05:00:00

경동초, 전학년 놀이프로젝트`예체능 통한 감성교육 실천
남덕초 '맨발걷기', '자치놀이' 활동으로 학교가 놀이터로 변신

대구 경동초는 학습 주제와 관련 있는 놀이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는
대구 경동초는 학습 주제와 관련 있는 놀이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는 '놀이수업'을 전 학년에서 실천하고 있다. 경동초 제공
지난달 말 대구 남덕초 학생, 교사들이
지난달 말 대구 남덕초 학생, 교사들이 '맨발놀이' 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맨발로 학교 곳곳을 걷고 있다. 허현정 기자

수업과 학교 환경 전반에 놀이문화를 도입해 학생들의 행복감을 높이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학업 스트레스와 스마트폰 사용 증가 등으로 놀이 문화가 사라지면서 학생들이 정서적, 신체적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일부 학교들은 놀이를 통해 수업을 재구성하고, 자연스럽게 건전한 놀이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현재 대구시교육청은 놀이기반 수업실천 선도학교 7개교, 놀이실천 행복학급 54곳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에 놀이 문화를 접목해 아이들의 성장을 유도하는 곳과 이를 통해 변화된 학생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경동초 '수업 같은 놀이, 놀이 같은 수업'
지난 17일 대구 경동초등학교에서 열린 6학년 미술 수업에서 학생들은 모둠별로 직접 디자인한 건축물을 재점검하고 있었다.

평소 주변 건축물을 주의 깊게 살펴본 학생들은 조별로 주거시설(주택, 아파트), 기반시설(다리, 도로), 상징물 등 주제에 따라 수수깡, 찰흙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주택, 빌딩을 만들었다. 이들은 직렬, 병렬 방식을 고려해 전구를 설치할 곳을 정했고, 소감과 배운 점을 말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2, 3학년 학생들은 노래, 빙고게임, 주사위 놀이를 이용해 구구단과 높임 표현을 익히고 있었다.

경동초는 최근 '공부하며 놀고, 놀면서 공부'하는 수업을 통해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학기 초 교사들의 연구를 거치고 학생들이 선호하는 놀이를 조사해 이를 수업과 연계시키는 것이다.

경동초는 신학기 전입생이 지역 소규모 학교 전교생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학생들의 학업 수준이 높아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로 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경동초에 부임한 권혜숙 교장은 1천600명에 달하는 학생들 틈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답답함과 학업 스트레스를 느끼고 고민에 빠졌다. 이에 '놀이'로 학생들의 정서를 보듬고 마음에서 나오는 행복을 깨우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권 교장은 먼저 학년별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한 놀이수업 시수 확보, 전 학년 놀이 프로젝트 등으로 놀이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놀이중심 교육과정, 방과후학교, 놀이주간 운영 등으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놀이 문화에 빠져들게 했다.

지난 9월 세이브더칠드런와 교내 '놀이아지트'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동초 '놀이환경 개선사업 학생위원회' 학생들은 장소 선정에서부터 설계에 이르기까지 적극 아이디어를 냈고, 학교 안팎으로 학생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이 설치됐다.

예체능을 통해 학생들의 감성 교육을 실천하는 점도 이곳의 특징이다. 어린 시절 예체능 교육이 평생 인성과 행복을 좌우한다는 판단에서다.

경동초에는 국악, 합창, 합주, 리코더, 연극 등 총 250명으로 구성된 예술동아리가 활동한다. 이들은 정기 연주회 및 발표회를 통해 정서적 표현력을 기르며 무대에 올라 기량을 펼치며 자존감을 기른다. 예술동아리 학생들은 16, 17일 대구학생동아리한마당 무대에도 올라 실력을 뽐냈다.

지난 1~12일 열린 '경동행복주간'에는 전통놀이 미니올림픽, 캐릭터 그리기, 영어페스티벌 등 학년별로 놀이에 흠뻑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 전반에 확산된 '놀이'로 학생들은 이미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들은 그간 문턱이 높았던 교장실, 교무실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교사들에게 편하게 말을 건네고, 수업시간에 만든 음식을 들고 오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한다.

놀이를 도입하면 생활 지도가 힘들어질 것이란 교사들의 우려도 사라졌다. 수업 시간에 활기가 생기고 공부 시간을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다.

권혜숙 경동초 교장은 "아이들의 '행복' 추구가 진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학교와 교사들의 가장 큰 목표다"고 말했다.

◆남덕초 '학교 전체가 커다란 놀이터'
지난달 말 대구 남덕초 전 교사와 학생들이 '맨발놀이' 시간이 되자 오전 이른 시간부터 운동장으로 나와 줄지어 걷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익숙한 듯 맨발로 우선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런 뒤 투호놀이, 비석치기를 하거나 모래사장으로 가 저마다 두더지집이나 화산 분화구 등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키우는 토끼와 병아리를 돌보며 그간 성장한 동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학생도 있었다.

남덕초 학생들은 매일 월~목은 30분, 금요일은 50분간 맨발로 운동장을 걸으며 학교 곳곳을 뛰어다닌다.

'2018 놀이기반 수업실천 선도학교'로 지정된 남덕초에서는 학년별 놀이기반 프로젝트, 놀이 동아리 활동, 놀이기반 행사(놀이기반 운동회, 페스티벌, 워크숍) 등이 연중 열린다.

학생 스스로 학생회 선출부터 놀이 규칙, 활동, 내용 등을 정하는 '자치놀이' 활동이 일상화돼 있는 점도 특징이다.

학교 농장의 식물 관리는 '식물병원장' 학생들이, 토끼, 병아리 사육 공간을 청소하거나 먹이 주는 일을 도맡는 '동물농장주' 학생들은 동물농장을 늘 관리한다. 학교 공간을 놀이터로 탈바꿈하는 역할인 '놀 권리 참여단', 놀이문화를 전교생에게 보급하는 '재미놀이보급단'도 학교의 놀이문화 확산에 기여한다.

실제로 남덕초에서는 학생들의 협의체에서 직접 조성한 놀이 공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학교 마당에 공중전화 부스처럼 조성된 곳은 동화책 수십 권이 꽂혀 있어 야외에서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원래 야외 계단이 있었던 곳은 학생들의 결정에 따라 미끄럼틀과 밧줄 등을 설치한 이른바 '모험시설'로 개조됐다.

'놀자'라는 교사들의 말에도 멀뚱멀뚱 있기만 했던 아이들은 점차 변해갔다. 놀이를 도입한 지 6개월이 지나자 학생들은 친구들과 스스로 '노는 법'을 찾아갔다.

6학년 박승빈 군은 "평소 맨발로 자유롭게 놀 수 있어서 좋다. 학교 곳곳에 있는 놀이터에서 오랜 시간 친구, 선생님, 자연과 더불어 활동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경희 남덕초 교장은 "아이들에게 놀이를 온전히 돌려주고자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활용했다. 학생들이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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