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핵 당사자인 한국이 대북제재 완화 창구로 나섰나

입력 2018-10-16 05:00:00

한국가스공사가 러시아·북한산 천연가스 수입을 위한 사업(PNG사업) 검토를 추진하는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1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규환 의원이 공개한 사실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북한산 석탄 밀반입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7월 러시아 가스프롬은 가스공사에 한·북·러 PNG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 전반의 경제성과 기술성에 대한 공동 검토를 요청했다. 이에 가스공사는 국내 유명 로펌에 PNG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와 유엔의 대북 제재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다고 한다.

실행 전이지만 사업 자체는 대북 제재 위반 여지가 크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는 북한 영토 내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강력히 금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가스공사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업 추진을 검토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전선(戰線)을 앞장서 교란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 정부가 남북 경협을 서두르면서 대북 제재 위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김정은·김여정·김영철과 북한 통치자금 담당 조직인 노동당 39호실 등 466개 대상을 ‘2차 제재 위험’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은 이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제재 대상에는 북한의 경협 관련 거의 모든 조직이 들어 있다. 이들 말고는 경협 파트너라 할 만한 게 없다. 사실상 대북 경협 전반에 자물쇠를 채운 것이다.

이는 문 정부가 자초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문 정부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미국이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에 앞서 영국 BBC와 회견에서 “북한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돼야 대북 제재가 완화될 수 있다”고 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이런 수사(修辭)만으로는 북한 비핵화는 어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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