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피앤씨갤러리 이배 개인전 (9월14일~10월 31일)

입력 2018-10-04 10:55:09 수정 2018-10-04 13:15:48

<2>이배

돌아서면 남이다. 남녀 간 사랑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야구 이야기다. 삼성 라이온즈 4번타자 최형우를 나만큼 응원했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팀에 가서 거기서도 잘 한다니까, 그럼 됐다. 이제는 관심 없다. 요즘은 안 봐서 모르는데, 그가 휘두른 배팅 궤적은 참 호쾌했다. 그런데 방망이에 제대로 맞아서 안타가 되었다 싶은데, 그 공이 수비수 정면으로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디펜스 시프트였다. 그건 수비수들이 상대 타자들이 날리는 타구의 길목을 미리 예상해서 본래 위치에서 떨어진 곳에서 막는 작전이다. 아무튼 그렇게 아웃될 때마다 상대팀이 쓰던 잔꾀가 얼마나 얄밉던지 모른다.

미술에도 네편 내편이 있나. 음, 그건 모르겠고 작가 이배가 작품에서 연출하는 포지션은 참으로 절묘하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저마다 있을 자리가 있다. 그게 그 자리에 있을 때 사람들은 안도를 느낀다. 매사에 그렇다면 권태롭기는 하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면 위험하거나 더럽다는 낙인이 찍히기 쉽다. 이배가 설정하는 위치는 원래 있을 자리에서 살짝 비켜난 지점이다. 수묵화 형식의 붓질이 화면 속에서 점유하는 위치가 그렇고, 숯덩이 설치 작품이 놓이는 위치가 그렇다. 난 작가와 이야기를 많이 안 해봐서 그를 잘 모른다. 내 주제에 평론가라고, 만약 내가 어떤 질문을 찌르듯 던지면 그 분은 수비 시프트를 걸어서 물음에서 살짝 벗어나 딴 말로 응수할 것 같기도 한데.

미술은 포지션 싸움이었다. 전통 회화 속에서 구도의 탐구와 개척은 매순간 미술의 역사가 되었다. 동시대 미술도 그랬다. 이브 클라인이 저질렀던 파리의 텅빈 갤러리 공간도 극단적인 작품 위치의 조정이었으며, 야니스 쿠넬리스가 로마의 갤러리에 말 열두 마리를 풀어놓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뭔가가 단연히 있어야 할 자리인데도 없거나, 어떤 게 있으면 안될 곳에 그걸 떡하니 갖다 놓는 것. 포지션의 반란이다.

컨템포러리 아트의 선배들만큼 노골적인 시도는 아니지만 이배도 뒤지지 않는다. '형, 아니, 숯이 여기에 왜 있어?' 더러워 보이지만 동시에 정결함을 가진 숯의 이중성은 작가 이배만이 몽땅 거머쥔 재료는 아니다. 숯으로 펼쳐낸 그의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단순하고 우아하다. 여기에 괜한 해석의 과잉을 덧대는 건 직업이 평론가인 사람들밖에 없다.

(윤규홍, 갤러리 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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