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한국 방문…“스스로의 정체성 찾는 건 삶을 이어갈 이유”
"제가 살던 동네 앞에는 강이 흘렀어요. 집들은 모두 양철이나 깡통, 폐품 등으로 벽을 만들고 지붕을 올린 것 같았죠."
44년 전 스웨덴으로 입양됐던 백성도(48) 씨는 "강변에 빈민촌이 자리잡았고, 건너편 강둑에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던 게 고향에 대해 남아있는 유일한 기억"이라고 했다.
1974년 5월 28일 그는 대구 북성로 인근 역전파출소 앞에서 발견됐다. 이후 서울 중구 초동에 있던 대한사회복지회로 인계됐고, 그 해 9월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하지만 그의 이름과 나이 모두 정확하지 않다. 백 씨를 돌봐주던 대한사회복지회 직원이 나이를 정했고,'성스러운 길' 이라는 의미로 '성도(聖道)'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백 씨는 "25살 때 양부모에게서 '한국 이름과 나이도 사실 진짜가 아니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실낱같이 붙잡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었던 탓이었다. 그가 극심한 소외감과 공허함에 빠진 건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유년기 탓도 있다. 스웨덴 가족은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화목하진 못했다. 양부모는 언제나 서로를 신경질적으로 대했고, 스웨덴 누나 2명도 마음을 터놓기 어려웠다. 스웨덴에서 항상 외로움을 느꼈던 그는 1997년 호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인만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없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백 씨가 낳아준 부모를 찾아 한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1997년 대구에서 2주간 머물렀지만 깊은 좌절에 빠졌다. "의사소통 문제가 가장 심각했어요. 외모는 한국인인데 말이 전혀 안 통하니 만나는 사람마다 신기해하고 비웃기까지 했죠. 도망치듯 대구를 떠났어요.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실망을 안고 돌아갔던 그는 지난달 17일 다시 대구를 찾았다. 이번에는 대구시와 경찰의 도움을 얻고자 관련 자료검색을 부탁하고 DNA 분석 의뢰까지 마쳤다. 도중에 여권과 휴대전화, 지갑을 도둑맞기도 했지만, 시립중앙도서관을 찾아가 과거 대구 전경을 찾아보고 옛 기억을 좇으며 무작정 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내가 누군지 모른 채 48년을 살았어요. 자식을 버리면서 어떤 정보도 남기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고 제 삶을 증오하기도 했죠. 내 진짜 이름은 무엇인지, 언제 태어났는지를 아는 것은 제가 삶을 계속 이어갈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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