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 할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구경한 적이 있다. 일기는 1967년에 쓴 것으로 한문으로 적혀있었다. 그 일기를 펼쳐 본 순간 아득하였다. 그 아득함은 무지에 가까운 나의 한문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말과 글이 일치된 삶을 살아 온 나와, 말과 글이 확연히 분리된 세계를 살아온 그 분 간의 그 거리가 너무나도 거대하고 깊게 느껴졌던 것이다. 김동성의 영어에세이 '동양인의 미국인상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1916)는 그 아득한 감정의 일부분을 설명해줄 수 있는 글이다.
김동성은 일제 강점기 서양문학전문번역가이면서, 기자, 작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909년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생활 7년 째 되던 해, 탁월한 영어 실력과 미국체험을 바탕으로 간략한 미국 인상을 담은 책을 발행한다. 그 책이 '동양인의 미국인상'(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이다. 책은 미국의 도시, 대학, 가정, 댄스문화, 자동차, 의상 등 미국문화 전반을 항목별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양인의 미국인상' 출판 2년 후인 1918년 김동성은 10여 년 미국 생활을 접고 조선으로 귀국한다. 귀국하자 곧, 자신의 영어견문록을 '미주(米洲)의 인상'이라는 제목의 조선어로 번역하여 신문에 연재한다. 서양 경험이 별로 없었던 1918년의 조선에서 미국유학생이 직접 쓴 미국인상기란 이슈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당시의 조선은 근대적 서양문명의 수용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막상 매일신보에 연재된 '미주의 인상'은 새로운 근대문명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 독자들의 열망에 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역부족은 문체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뉴욕의 마천루들이 길게 늘어선 산맥처럼 보였다'라는 뜻의 영어문장이 '高山峻嶺인가 疑 한바, 卽摩天하는 鐵甕石壁의 市街建築物'라는 한문문체로 바뀌면서 영어 원문의 사실적 풍경묘사 전달에 실패해버린 것이다. 한학교육만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10여 년을 머물렀던 김동성으로서는 그 십 여 년 간 조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언문일치에 기반한 새로운 문체의 흐름을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것만이 아니었다. 동양적 한문문맥의 세계와 근대적 서양세계, 이 두 세계 간의 차이를 김동성이 간과했던 것이다. '미주의 인상'이 단 4회 연재로서 막을 내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한국말을 하며 살아왔지만 한문을 사용한 친구 할아버지와 한글을 사용하는 나 사이에도 거대한 거리가 놓여 있다. 친구 할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그 분이 사용한 한자와 한문 문맥을 지탱하는 정신적 세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공부해야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 사이의 이해는 그처럼 수 없이 많은 이해의 터널을 빠져나와도 도달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구 할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한자와 한문의 세계를 돌아보는 노력을 기울이는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에 한 발짝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도 이처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혜영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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