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한 한인부부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등반기

등반 루트가 잘 정비되고, 등산 장비 기술이 발달하면서 히말라야 등정 난이도는 낮아졌다. 최고봉 에베레스트에는 연간 700여명이 등반에 나선다고 한다. 등정률도 높아졌다. 심지어 '돈만 있으면 세르파가 업어서 에베레스트 정상석 앞까지 데려다 준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한다.
이 책은 필리핀에서 한의사로 개업 중인 최찬익 씨와 플루티스트 서지나 씨 부부의 히말라야 산행기를 엮은 책이다. 티벳의 산맥이 그 대상이지만 엄홍길, 허영호처럼 14좌 등정기도 아니고 생사를 넘나드는 정상 정복 얘기도 아니다. 히말라야 주요 산맥의 8개산을 골라 전체 루트 중 베이스캠프까지 등정기를 정리한 것이다.
해발 4,000~6,000m급 코스로 일반인들에게는 생사를 넘나드는 험산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로 부부는 가이드마저 도망친 5,000m 절벽에서 밤새 추위에 떨며 위기의 순간을 맞기도 했다.
부부의 실전 등정기인 덕에 트레킹 코스와 길이, 난이도, 그리고 포터와 가이드 정보까지 꼼꼼히 기록돼 이제 누구든지 결심만 하면 이 책의 안내를 받아 등반에 나설 수 있다.
편안한 침대 대신 자갈밭 야영을, 멋진 브런치 대신 전투식량을 자청한 그들이기에 부부는 감히 말한다. "때로는 말이 안되게 무모해질 필요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히말라야 8개산 베이스캠프 등반=운동에 재주가 없고, 걸음이 아주 느렸던 한의사 최 씨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목숨을 걸지 않고, 일생에 한번 해볼 만한 여행 프로젝트에 대해 고민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그는 20여년 혼자 티벳의 설산을 다녔다.
그러던 차에 결혼을 하게 되고 '산행 파트너'가 생기자 미완으로 남아 있던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함께 걷기로 결심했던 것. 부부는 8개산의 베이스캠프를 두 번에 걸쳐서 모두 완등 했다.
히말라야에는 8,000m급 고봉이 14좌 있는데 그 중 8좌가 네팔, 인도에 걸쳐 있다. 부부가 오른 산은 에베레스트, 로체, 초오유,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마칼루, 칸첸중가다. 이 책에는 이 부부가 가이드와 포터를 데리고 트레킹한 네팔, 인도 히말라야 8좌의 베이스캠프에 이르는 길의 루트와 그들이 사용한 비용까지 모두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에베레스트, 초오유, 로체가 있는 쿰부히말라야와 안나푸르나, 랑탕 히말라야의 트레킹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해 그 루트와 일정이 일반화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마칼루, 칸첸중가, 로체 남벽 트레킹 정보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히말라야의 설산을, 특히 오지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책이 될 것이다.

◆트레킹 통해 내면 돌아볼 기회=우리 전체 인구 25%가 즐긴다는 등산은 국민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다. 등산객들에게 히말라야는 일종의 버킷리스트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안나푸르나의 ABC, 푼힐, 안나푸르나 서킷,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그리고 랑탕 히말라야 도전을 꿈꾼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트레킹에 들어가는 시간도 만들기 어렵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화로 몇 백만 원씩 드는 비용도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이 부부도 유명인이 아니기에 협찬은 생각도 못 했고 대부분의 트레커들처럼 스스로 저축해 비용을 만들고, 열심히 일해서 시간을 만들었다.
이 책의 특징은 현지에서 직접 찍은 다양한 사진들이다. 독자들은 다울라기리, 칼로 포카리 호수, 마나슬루 사마가온 마을, 칸첸중가, 그리고 고쿄에서 보는 에베레스트, 촐라 패스의 환상적인 설산을 접하는 것만으로 적지 않은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트레커들은 히말라야는 한국에서 산을 타듯이 전투적으로 오르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산속의 은자(隱者)들처럼 천천히 걷고 밤에는 별들을 보고, 때로 찾아오는 고산병에 힘겨워하며 여유롭게 걸어서 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산의 '산'(山) 자도 모르던 플루티스트, 방송인이자 선생님인 부인 서 씨도 몸과 마음을 낮춰 히말라야산에서 첫발을 떼면서 마침내 인생 2막을 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서 씨는 "걸으면서 힘들rh 때로는 내 깊은 곳에 숨어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러한 자신에 대한 직시(直視)가 역설적으로 히말라야이기에 가능했다"며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자신의 모습과 대비되어 설산은 더 빛나고 아름다웠다"고 적고 있다.
우리의 삶은 그리 길지 않다. 이 짧은 '여행' 속에서 우리는 내 삶의 주인으로써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저자는 고생스럽고 힘들었지만 굳이 이 책을 내게 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단한 번만이라도 길고,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져보라'는 뜻에서 였다고 밝히고 있다. 569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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