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이미지의 역기능과 순기능

입력 2018-05-23 00:05:00

"살림에는 눈이 보배다." 알뜰한 살림은 눈으로 잘 보살펴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본다'는 것은 시지각(視知覺)을 의미한다. 조선 왕실에서는 임신 3개월이 되면 산모에게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보게 했다고 한다. 좋은 책과 좋은 그림을 보게 한 것도 산모의 감상이 태아에게 전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이 곧 '지적 행위'임을 방증한다.

시각문화 연구자들은 '보는 행위'에 주목한다. 보는 행위에는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이 내재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사물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태에만 갇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태심리학자인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의식과 시각의 상호작용을 밝혀냈다. 특히 형태 분석으로 예술의 본질과 정체를 명명한 것은 그의 대단한 업적이다. 그는 사람이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가 하면 정신의학자인 헤르만 로르샤흐(Hermann Rorschach)는 잉크 자국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진단하였다. 이를테면 똑같은 데칼코마니를 보고 어떤 사람은 나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악마라고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정신 상태, 욕망 따위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로르샤흐의 주장이다. 이미지에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적 심리 상태가 반영된다. 해석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실험은 성격심리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 널리 응용되고 있다.

그러나 말이나 글자처럼 구체적이지 않은 이미지는 다의적(多義的)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의적인 이미지로 소통을 할 때이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미지로 정보 전달을 할 때는 주의가 요구된다. 현대에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이미지 오남용이 큰 이슈이다. 얼마 전 매스컴을 달군 남성 누드모델 사진 유출 사건도 하나의 실례겠다. 남과 여라는 성별 대립으로까지 치닫게 된 것은 불편한 이미지의 무분별한 유출이 발단이다. 때론 이미지가 인신공격의 수단이 되거나 권력을 시각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 내용이 좋으면 겉모양도 반반하다는 뜻이다. 더불어 이미지에 버금가는 알찬 내용도 기대하게 된다. 좋은 것을 보면 감정이 순화된다. 산모가 시각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속한 이미지의 무분별한 노출은 정신을 갉아먹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한 단계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도 아득해진다. 약이 되는 이미지의 생산은 재주보다 덕(德)이 앞설 때 가능하다. 창의적이면서도 배려심이 밴 이미지가 풍성할 때 세상은 더 밝아질 것이다.

서영옥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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