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한 터전을 가꾸는 일, 삶의 철학 '풍수'…『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입력 2018-05-05 00:05:03

"좌청룡우백호 같은 이론보다 현장에 가서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생활풍수에 가까워"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 최원석 지음/ 한길사 펴냄

우리 민족에게 풍수는 생활 속에 녹아든 삶의 철학이자 생활의 중요한 요소였다. '살 만한 터전'을 가꾸는 일 자체가 풍수였고, 체계화된 지리(地理)는 우리의 전통적 사고구조의 한 축이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기후, 풍토 여건에 맞춰 창의적으로 실천해온 삶의 태도이자 방식이기도 했다.

이런 풍수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종의 미신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면서도 일제는 전국의 명당에 쇠말뚝을 박는 비문명적이고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산가'(山家)로 불리는 최원석 경상대 교수가 풍수에 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저자는 오늘날 왜곡된 인식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풍수의 본모습을 밝히려 애쓰고 있다. 각종 사료와 도판, 사진을 활용했다.

◆미신, 실용, 과학 사이 애매한 정체성

오늘날 우리에게 풍수는 미신과 실용, 신비와 경험, 사실과 허구가 섞인 애매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누군가는 TV 프로그램에서 정체가 불분명한 무속인이나 도인을 섭외해 수맥을 찾거나 비현실적인 운명론에 대해 논하는 것을 떠올린다.

저자는 이런 우리 사회의 풍수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합당한가 묻는다. 1천여 년 전부터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은 풍수는 단순히 과학으로 극복해야 할 낭설에 불과한가. 이 책은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최 교수는 우리 풍수는 현장에 가서 직접 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생활풍수'에 가깝다고 말한다. 문헌에 남아 있는 좌청룡 우백호 같은 이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마을 고유 풍수설화나 오래 가꿔온 경관에서 한국풍수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풍수 지식 체계는 한국인의 자연에 대한 태도와 문화경관 입지에 영향을 주고 자연경관을 문화 경관으로 바꾸는 인자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고려, 조선 거치며 민간 생활 속으로

한국풍수의 또 다른 특징은 불교와 결합이다. 불교는 한국에 전파된 최초 종교라는 점에서 두 사상의 결합은 필연적이었다. 이는 한국풍수 시조를 승려인 도선(道詵)으로 보는 것이나 사찰을 지을 때 대부분 풍수적 입지를 고려한 것을 봐도 잘 드러난다. 풍수는 8세기에 중국에서 전해졌지만 고려시대 들어와 불교와 결합하며 한국 풍수 특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명찰의 입지(立地)에만 풍수가 활용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지배층이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풍수를 활용했다.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나 묘청의 '서경천도론'이 대표적 사례다. 또 왕궁이나 왕릉, 국가 사찰 등을 만들 때 풍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반 백성들과 왕실을 차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계급적, 귀족적 풍수사상은 조선시대가 되면서 민간의 삶에까지 뿌리를 내리게 된다.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들은 풍수를 주자학이라는 준거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크게는 국가적 제도에서 작게는 향촌사회의 공간담론과 개인적 주거생활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1세기 한국 풍수의 올바른 발전 방향

저자의 관심은 21세기 학자들은 풍수를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가에 미친다. 최 교수는 서양의 연구에서 평가된 풍수의 의의와 비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환경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발전 대안 ▷심미적 경관미학 ▷지속가능한 주거지 입지선택과 건축 디자인 적용 ▷환경과 생태적 가치의 증진 등에서 그 가치를 찾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문화 다양성 가치가 중시되는 오늘날 풍수가 동아시아적 환경지식체계의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존하는 풍수경관은 자연과 문화의 통합적 유산으로서 문화적 경관자원이기도 하다. 한국의 왕릉과 하회·양동마을의 풍수적 입지요소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 있는 것이다.

한국 풍수의 역사와 의의 그리고 오늘날 연구 성과까지 집대성한 이 책은 사회, 문화, 정치, 지역적인 접근 방법으로 풍수연구의 새로운 지평과 학문적 체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담아냈다.

21세기 풍수 르네상스를 꿈꾸는 저자는 마지막 5장에서 "최근 풍수에 관한 이론이 양적, 질적으로 해석 수준이 높아졌다"며 "과거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현대적, 과학적 접근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짚었다. 무엇보다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서구에서도 풍수에 관심이 커지고, 연구가 급증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려와 조선이 풍수사상에 다양한 시류(時流)를 담아냈듯, 현대에서도 한국 풍수가 세계의 담론으로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676쪽, 2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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