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독일의 직업교육과 자아탐색

입력 2018-05-01 00:05:00 수정 2018-10-10 14:47:18

대학공부 중단 요리사 직업교육

취업보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한국에선 돈벌이 되는 것만 추구

자신의 존재 의미 망각해선 안 돼

'직업'에 해당하는 독일어 'Beruf'라는 단어는 신으로부터 주어진 소명(召命, Berufung)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서 직업은 각자의 인생에서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독일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며 용기 있게 자아를 찾아가는 자의식이 강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학창시절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발도르프 학교(전인교육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예술, 신체, 지성교육을 조화롭게 통합시킨 교육을 실시하는 특징을 지닌다)를 다녔다. 발도르프 학교와 가정교육의 영향인지 그 친구는 인간이 정신적 활동(머리)을 수공예 작업(손을 움직여 사물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면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과 결합하면서 창의적인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해나가고,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 내면의 자유를 표현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대학 공부(학문적 활동)가 자기의 적성에 맞지 않아서 학업을 중단하고 요리사 직업교육을 받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아비투어(대학 입학 자격요건의 시험)를 치고 정신적 사유를 즐겨 하였던 친구가 갑자기 직업교육(실업계)의 길을 선택한 것에 필자는 솔직히 당황했었다. 독일에서도 교육학과 같이 인문사회 분야 전공자들의 취업은 이공계 졸업자보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현재도 그러한 상황은 지속적이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 요리사의 진로 선택은 취업을 염두에 두기보다, 인간이 육체(손의 이용)와 정신적 사고활동을 연결해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체험하고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직업교육은 국가로부터 승인된 산업체에서의 실습과 직업학교에서의 이론교육이 결합된 이원화 방식으로 이뤄진다. 초등학교 4학년 후 실업학교와 주요 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양한 전문 직종(치과보조사, 미용사, 간호사, 자동차기술자, 제빵사, 정육사 등)에서 3년 과정의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 일주일에 1, 2일간은 직업학교에서 일반 교양과목(제2외국어로 프랑스어, 물리, 화학, 영어, 수학 등)과 해당 전문 분야의 이론적 지식이 교육되고, 3, 4일간은 산업체에서의 실습이 실시된다. 그러나 필자의 친구가 대학 입학 자격을 가졌기 때문에, 도제훈련(Lehre) 기간이 6개월 단축될 수 있었다. 도제훈련을 하면서 매년 증가하는 훈련수당을 받는다. 직업교육 과정을 거치면 졸업시험을 통해 수료 증서를 받게 된다. 한편, 직업교육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 했던 친구의 이상(理想)은 레스토랑의 현장실습에서 구현되지 않았고, 힘든 직업교육 과정을 마치면서 졸업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19세기 말 일반 교육보다 낮게 평가되었던 직업교육의 위상을 높였던 '직업학교의 아버지'로 알려진 독일 교육학자 케르센슈타인은, 지식교육뿐만 아니라 수공업 수업, 노작교육, 체험활동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 직업학교는 이 단어가 함의하는 본래적 의미와 이념과 달리 청소년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노동시장 정책의 도구로 전락하였다. 실제로 직업교육은 독일 청소년 실업률을 감소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개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경쟁력을 갖춰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친구의 자아탐색과 결단은 현재 우리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망각한 채 취직에 유리한 것, 돈벌이가 되는 것만을 추구하고 사회문화적 요구에 기계적으로 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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