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책을 한 권 펴냈다. 늘 그래 왔지만 잘 읽었다는 인사와 함께 뒤따라오는 게 '등장인물이 실제냐'는 물음이다. 그걸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 전체적인 이야기로 보자면 허구이지만 등장인물은 실제로 혹은 환상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시골길, 바닷가, 죽도시장에서 많은 이웃들을 만난다. 그들은 어떤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지를 직접 들려준다. 그 이야기 중에서 나 혼자만 알고 넘길 수 없었던 것에 글이라는 옷을 입혔을 따름이다.
밭 자락에 뒹굴던 돌덩이가 국보로 된 냉수리 신라고비, 도로 공사 중에 알게 된 중성리 신라비, 이는 보물이 보물로 밝혀지기 전에도 우리 곁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과 평가가 인색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오늘을 만든 이는 가족과 이웃이고, 지역사회의 하늘과 땅, 자연, 전통이건만 우리는 이를 하찮게 여기며 살고 있다. 지역 사람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대단하게 여긴다.
독일 여행을 하면서 유럽 동화의 뿌리 중 하나인 그림형제 동화의 진실을 보았다. 그림형제는 자신의 지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수집하여 한 문장도 고치지 않고 책으로 펴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바로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엮음으로써 독일인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우리 고장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이야기들이 아직까지 가늘게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호미곶에서 어떤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는 20년 넘게 내 가슴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장기목장에 뛰어놀던 군마, 일본군이 강제로 300여 필을 끌고 갔다는, 호미곶 등대를 준공하는 날 무적(등대나 선박이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갖춘 소리를 내는 장비)에 놀란 말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고금산에 쇠말뚝을 박을 때 붉은 피가 흘러넘쳤다는 이야기는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 고장에 있었던 아픈 역사이며, 우리 할아버지들의 눈물이었다. 묵혀둘 수 없어서 글로 옮긴 게 '마지막 군마'였다.
내 어릴 때만 하여도 학산 어판장에는 고래가 종종 올라왔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지금도 바다에 서면 수평선에 고래가 올라설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길은 늘 행복하다. 나는 요즘도 멍 때리듯 길을 나선다. 형산강, 폐사지, 고갯길, 죽도시장, 시골 마을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광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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