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살라미 전술

입력 2018-03-29 00:05:00 수정 2018-10-12 09:33:54

우리의 식생활이 '세계화'되면서 '살라미'(salami)도 이제 낯설지 않은 식품이 됐다. 살라미는 분쇄한 고기에 향신료를 넣고 잘 섞은 뒤 10~100일 정도 발효와 숙성을 거치는 발효 건조 소시지이다. 1730년경부터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며 1830년경 이탈리아의 제조 기술자가 헝가리로 이주해 살라미를 생산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살라미는 장기간 보관해두며 얇게 썰어 먹는데 그냥 먹기도 하고 샌드위치나 피자에 활용하기도 한다. 살라미를 이용한 음식 중 살라미 카나페라는 게 있는데 크래커나 오븐에 바싹 구운 바게트 빵 위에 살라미를 올려 치즈와 함께 만든 초간편 요리로,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

이런 살라미 먹는 방법에 착안해 만들어진 용어가 '살라미 전술'이다. 처리해야 할 문제를 최대한 잘게 나누어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는 뜻이다.

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이 헝가리 독재자 라코시 마사치로. 1940년대 후반 헝가리를 공산화하면서 "(비공산주의자들을)살라미 조각처럼 섬멸해야 한다"고 했다. 살라미를 얇게 저며내듯 적들을 순차적으로 격파한다는 것이다. 이 전술에 따라 마사치는 우파를 시작으로 중도파, 좌파 중 공산당과 노선이 다른 정파를 차례로 제거해나갔다.

이 전술은 북핵 협상에서 북한이 구사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북한은 지난 25년간 핵 협상 단계를 최대한 잘게 쪼개 각 조각별로 이행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면서 국제사회를 농락했다. 단적인 예가 2007년 2'13 및 10'3 합의이다. 신고'검증과 핵 폐기의 두 단계로 가야 할 협상이 북한의 전술에 말려 동결-불능화-신고-검증-폐기의 5단계로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핵 폐기 단계로의 이행은 계속 차단'지체되면서 핵 폐기는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북한 김정은이 중국 시진핑과 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이 평화 안정 분위기를 조성하며 단계적으로 보조를 맞춘다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한'미의 선(先) 보상 이후 단계적 비핵화'다. 김정은이 대북특사단에게 밝혔다는 '비핵화'란 바로 이것이었던 셈이다. 예상했던 대로다. 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미'북 평화협정 등 미국이 선제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협상을 최대한 질질 끌겠다는 속셈이다. 미국은 이런 기만전술에 다시는 속지 않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