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행복 100세] ⑦ 대구 떠나는 젊은이들

입력 2018-02-23 00:05:00

일 더하고 돈은 덜 받고…청년 7천명 매년 '대구 엑소더스'

취업난이 길어지면서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고 있다. 대학 도서관은 방학임에도 빈 자리를 찾기 어렵다. 매일신문 DB
취업난이 길어지면서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고 있다. 대학 도서관은 방학임에도 빈 자리를 찾기 어렵다. 매일신문 DB

청년은 도시의 미래다. 현재 대구 청년의 표정은 머지않은 장래 대구의 자화상에 투영된다. 그러나 대구 청년의 얼굴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매년 1만여 명의 청년들이 더 나은 미래를 찾아 고향을 떠난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구의 20, 30대 청년 순유출 인구수는 연평균 7천780명에 이른다. 청년이 떠나는 도시는 활력이 사라지고, 미래의 성장 동력을 잃게 된다. 청년들은 왜 대구를 떠나는 것일까.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의 굴레에 지친 청년들

"대구에서는 월 150만원만 받아도 '괜찮은 일자리'에 속해요." 대구 수성구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신준호(가명'31) 씨는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을 한다. 오전 7시면 출근길에 오르고,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업무가 밀리면 자정을 넘기는 날도 다반사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사정에 '칼퇴근'은 남의 얘기나 다름없다.

올해로 직장생활 4년 차인 신 씨는 매달 수당을 포함해 180만원가량을 손에 쥔다. "서울에서 일하는 다른 친구들보다 급여가 너무 적어서 항상 형편이 쪼들려요. 씀씀이는 비슷한데…." 그는 요즘 틈날 때마다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타 도시로 이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다. 대구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 고임금, 고용안정성 등을 갖춘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노동환경도 열악한 편이다. 임금은 전국 최저 수준인 반면, 근무시간은 상대적으로 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84만원으로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제주(265만원) 다음으로 낮았다. 전국 평균(352만원)보다 70만원 가까이 적었고, 서울(394만원)과는 120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반면 일하는 시간은 길다. 대구의 1인당 월 근로시간은 178시간으로 전국 평균(173시간)보다 높다. 가장 짧은 서울(166시간)보다는 12시간이 길다. 대구 근로자들은 서울에 비해 매달 12시간 더 일하지만 봉급은 120만원 적은 셈이다.

20, 30대 청년만 따지면 현실은 더욱 열악해진다. 대구청년유니온이 지난해 2월 발표한 '2016 대구지역 직종별 청년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역 청년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175만원에 불과했다. 반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1.5시간에 달했다.

돈을 덜 번다고 지출 규모가 적은 것도 아니다. 취업준비생 류한철(27) 씨는 "온라인 쇼핑몰에 지역 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과 똑같은 프랜차이즈 식당에 통신비까지 지출 부담은 똑같다"면서 "'대구는 물가가 싸니 월급을 적게 받아도 된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보니 공무원 쏠림 현상도 강하다.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한 대구에서 공무원은 몇 안 되는 양질의 일자리여서다. 3년 차 공무원 강모(28) 씨는 "취업이 잘된다는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타지 생활엔 자신이 없었다"면서 "대구에서 선택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공무원이 거의 유일했다"고 푸념했다.

◆쏟아지는 취업준비생에 자기계발 여건도 안 돼

대구는 양질의 일자리가 적은 만큼 취업 기회도 제한적이다. 지난해 대구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신지수(가명'27) 씨는 다음 달부터 서울의 모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대구에서 취업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보다 기회가 많은 서울행을 선택한 것이다. 신 씨는 "굳이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상경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대구에는 미래를 걸고 취업할 만큼 확실한 일자리가 없고, 평범한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올 1월 대구지역 고용률은 56.6%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9%포인트 하락했다. 취업자 수도 119만4천 명으로 2013년 이후 4년 만에 12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취업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도 86만 명에 이른다. 동북지방통계청 관계자는 "20, 30대 청년 취업자 수 감소폭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고학력자들이 원하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서울 등 다른 도시로 떠나거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취업준비생을 위한 자기계발 인프라도 부족하다. 타지로 떠나는 청년은 많고 기업은 적다 보니 함께 스터디그룹을 꾸리거나 기업의 대외활동 등으로 '스펙'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김도윤(26) 씨는 "특히 취업에 필수적인 '정보력' 측면에서 수도권 학생들에게 크게 밀린다"고 아쉬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수도권 대학 진학에 매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대구의 4년제 대학에 합격한 이소현(20) 씨는 등록을 포기하고 재수를 선택했다. 이 씨는 "대구보다는 서울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종류도 다양하고, 경험의 폭도 훨씬 넓힐 수 있다"며 "대구에 살려면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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