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옥수수 한가마 태워가며 적은 노트 한 권…지금은 뻥튀기 장인

입력 2018-02-06 00:05:00

염매시장 뻥튀기 장수 남상택 씨

뻥튀기를 위해 깡통에 알곡이 한 되씩 담겨 있다.
뻥튀기를 위해 깡통에 알곡이 한 되씩 담겨 있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 뻥튀기의 추억이 떠오른다. 1960, 70년대 뻥튀기는 아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간식이었다. 대구 염매시장에서는 요즘 뻥튀기 소리가 귀를 때린다. 남상택 씨가 뻥튀기 기계의 걸쇠를 당기며 튀밥을 튀기고 있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설 명절이 다가오면 뻥튀기의 추억이 떠오른다. 1960, 70년대 뻥튀기는 아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간식이었다. 대구 염매시장에서는 요즘 뻥튀기 소리가 귀를 때린다. 남상택 씨가 뻥튀기 기계의 걸쇠를 당기며 튀밥을 튀기고 있다. 이채근 선임기자 mincho@msnet.co.kr

대구 염매시장 한 강정 가게. 뻥튀기 기계 2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설 명절이 다가오자 소리가 요란하다. "뻥~ 뻥~." 가게 밖에서 모이를 쪼아먹던 참새들도 놀라 우르르 날아간다. 시장을 걸어가던 젊은 연인들도 귀를 막는다. 칠성시장에서 온 할머니가 찹쌀 두 되를 갖고 왔다. 뻥튀기해서 강정을 만든단다. 뻥튀기 아저씨는 "할머니, 튀밥 멋지게 튀겨 드릴게요"라며 콧노래를 부른다. 할머니 뒤에는 또 한 분의 아주머니 손님이 줄을 섰다. 뻥튀기 기계가 10분 정도 돌고 나더니 "뻥" 하고 울렸다. 아저씨는 "곱게 튀겨졌네"라며 만족해했다. 할머니도 "튀밥이 곱네"라며 흡족해했다. 이곳 아저씨는 염매시장에서 25년째 뻥튀기를 하고 있는 남상택(76) 씨다. 겨울 모자를 꾹 눌러쓰고 목장갑을 낀 그는 염매시장에서 마음씨 좋기로 소문나 있다. 그는 염매시장 뻥튀기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의 즐거운 뻥튀기 인생을 엿봤다.

◆25년간 터득한 뻥튀기 노하우

"기자 양반, 이거 보시라요. 30년 전에 기록해놓은 뻥튀기 노트 말이에요." 그는 가게 서랍장에서 노트 한 권을 꺼냈다. 노트는 오래돼 흐물흐물 찢기고 누렇게 색깔이 변해 있었다. 노트 겉장을 넘기니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다. '쌀은 10℃, 콩은 6℃, 강냉이는 12℃.' 그가 뻥튀기를 하기 전 어깨너머로 보았던 뻥튀기 압력을 기록해두었던 것. "이 노트가 내 뻥튀기 재산 아닌교." 그는 뻥튀기를 한 25년간 이 노트의 고마움을 잘 알고 있다. 빛바랜 노트 한 권이 남 씨를 뻥튀기 인생으로 이끌었다. 그는 하루에도 수백 번 뻥튀기를 하고 있다. 그는 뻥튀기 전에 말린 알곡을 입에 씹어보는 습관이 있다. 알곡 건조 상태에 따라 압력조절을 달리해야 한다. 그는 말린 떡국떡 튀기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떡국떡은 그늘에서 말려야 튀밥이 곱게 나온다. 건조기에 넣거나 햇볕에 말린 떡국떡은 잘 튀겨지지 않는다. 딱딱한 알곡은 물을 조금 섞고 압력을 약간 더 올려서 튀긴다.

또 압력이 너무 올라갔을 땐 걸쇠를 약간 젖혀 김을 좀 빼고 튀겨야 튀밥이 알맞게 나온다. 그는 기계 롤러 부분에 이물질이 끼어 잘 안 돌아가거나 압력계로 통하는 바늘구멍이 막혀도 즉시 해결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처음엔 찰옥수수 한 가마 태운 적도

뻥튀기를 하기 전 30, 40대 나이에는 외제 라디오 등 전자제품 유통사업을 했다. 사업은 번창해 사업 규모가 커졌다. 외제 옷을 입고 자동차도 외제를 탔다. 하지만 자금이 달려 부도가 나면서 사업이 망했다. 거리로 내몰린 그는 형님의 도움으로 현대백화점 자리에서 뻥튀기를 시작했다. "뻥튀기 2대를 사놓았지만 손님이 안 와요." 하루에 500원도 못 버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또 자신이 뻥튀기를 하는 게 부끄러웠다. 더운 날에도 마스크를 끼고 작업을 했다. 뻥튀기 경험이 부족해 튀밥도 곱게 나오지 않았다. 불 조절을 잘못해 찰옥수수 한 가마를 태운 적도 있다. 그는 뻥튀기가 허망하기만 했다. 그때 미숫가루를 판매하던 부인 이인자(68) 씨가 용기를 주었다. 그는 마스크를 벗고 다시 장갑을 꼈다. 알곡의 건조상태와 압력계 온도 등을 일일이 체크하며 기술을 터득했다. 그렇게 수개월의 시간이 흘러서야 제대로 된 튀밥이 나왔다. 손님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 하루 200되를 튀기기도 했다. 현대백화점이 들어오면서 염매시장으로 이전했다. 이곳에서 7년째 뻥튀기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 염매시장에서 최고 뻥튀기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각박한 마음도 곱게 튀길 수 있다면

"사람의 인생길은 본래 똑바르게 나있죠. 그런데 옆길로 새면 인생이 망가지기 쉬워요."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은 소중하다. 그의 좌우명은 "똑바로 걷자"이다. 그는 뻥튀기 25년간 허투루 살지 않았다. 뻥튀기를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 자부심을 갖고 한 우물을 팠다. 그는 뻥튀기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뻥튀기를 즐기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도 상냥하다. 싱글벙글 웃으며 짜증도 내지 않는다. 그는 웃다 보니 즐겁고, 즐겁게 일하니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그는 1남 1녀의 자녀를 뒀다. 자녀들도 출가해 아들, 사위 모두 의사 직업을 갖고 있다. 자녀들도 뻥튀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는 훌륭하게 자라준 자식이 고맙기만 하다. 자식들은 키워준 아버지가 고마워 해외여행도 자주 보내주고 있다. "나이 들어 자식한테 대우 잘 받으니 정말 행복하다.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닐까요." 그는 팔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 몸이 건강하고 마음은 젊음이 넘친다. 그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뻥튀기를 하겠단다. 각박한 세상, 우리네 마음도 튀밥처럼 곱게 튀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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