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 물 넣는 10분, 열차'승객 막간의 휴식
1940년부터 28년간 증기차 파트너
200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철로에 가로막혀 가까이 접근 못해
2020년 폐선 후 부지 공원화 예정
화본역처럼 관광 콘텐츠로 키워야
"1940년 태어났다. 태어나 지금껏 한자리에 있었다. 운명이다. 곁에 있던 짝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나는 운이 좋았다. 1950년 한국전쟁 때도 살아남았다. 그해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이어졌던 격전. 무수한 유탄을 맞았다. 총탄에 파인 자국은 역사의 흔적이 됐다. 이른 나이에 일을 그만뒀다. 1967년이었다. 임무를 끝내면 생도 끝날 줄 알았지만 50년을 더 살았다. 환갑을 넘겼을 때 정부는 훈장 같은 걸 줬다. 등록문화재라고 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 했다."
◆가까이 갈 수 없는 등록문화재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현재도 운영 중인 안동역 부지에 있어서다. 철로를 건너다니며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직 안동역 남측 축제장길, 두리원웨딩홀 인근에서 비탈길을 내려와야 했다. 내려와도 10m가 남았다. 폭 2.5m 하수가 흐르는 도랑은 발아래 담장이었다. 도랑 위 비탈에는 수많은 이들의 접근 흔적이, 머리숱 많은 이의 가르마처럼 남아있었다.
가까이서 급수탑을 보려 했던 발자국들이 만든 길이었다. '도랑을 건널 다리만 있었다면….'
안동역 관계자는 "2020년쯤 폐선이 예정돼 있다. 안동시가 안동역 부지를 공원화할 계획을 갖고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아직 안동시와 한국철도공사가 등록문화재인 급수탑의 접근성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는 말로 들렸다.
실제로도 그랬다. 중앙선 도담역~영천역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공되면 안동역은 이전한다. 현재 안동역 부지는 실버타운과 공원으로 바뀔 것이라는 청사진이 나와 있다. 그때나 돼야 안동역 급수탑에 접근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2003년 지정된 등록문화재이건만.
◆화려한 은퇴식 없었지만
1967년 8월 31일이 마지막이었다. 화려한 은퇴식은, 그동안 노고가 컸노라는 공치사는, 그날 없었다. 1940년 준공돼 30년 가까이 증기기관차의 연료통이 됐던 급수탑의 퇴역치고 쓸쓸했다.
1956년부터 40년간 철도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는 김성근(86) 씨는 "24시간 종일 담당자가 지키고 있다가 열차가 들어오면 1.5t 용달차 규모의 탄수차(炭水車'석탄과 물을 실은 선두 열차)에 급수했었다"고 회상했다.
급수 작업은 잦지 않았다. 정차하는 열차는 많아야 하루 10대. 승객을 태운 열차는 플랫폼 옆에 두고 열차의 머리인 탄수차만 홀로 물을 채우러 급수탑 곁으로 왔다. 10분이면 충분했다. 지름 20㎝ 급수관으로 쏟아진 물은 삽시간에 탄수차를 채웠다.
다음 급수탑이 있는 풍기(상행)나 화본(하행)까지 넉넉했다.
승객이 적거나 화물이 적으면 곧장 대구나 경주까지도 갈 수 있었다. 급수시간은 승객들도 쉬는 시간이었다.
승객들은 열차에서 내려 완행열차에 지친 몸을 풀기도, 시장기를 해결하기도 했다.
철도경찰로 1963년부터 35년간 일했다는 김귀웅(80) 씨는 "급수탑에서 물을 받는 10분은 열차는 물론, 승객들에게도 충전의 시간이었다"고 기억했다.
◆일부 급수탑은 꽃단장
안동역 급수탑은 50년 전과 달라진 게 많지 않았다. 12각 머리에, 12m 키도 그대로다. 다만 옆을 지키고 있던 직원 숙소 겸 펌프실이, 급수탑에 붙어 있던 사다리가 사라졌다. 반세기 동안 사용된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유물이다.
2003년 붙은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동판마저 골동품 분위기를 돕는다. 증기기관차라는 파트너가 없으니 급수 용도 회복 가능성도 결코 없다.
그러나 일부 급수탑은 관광 상품으로 변신 중이다. 1914년 경원선 개통과 더불어 준공된 연천역 급수탑을 비롯해 연산역, 도계역, 추풍령역, 영천역, 삼랑진역 급수탑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충주역, 화본역 등은 등록문화재가 아닐 뿐 관광지로 치장한 지 오래다.
이 중 삼랑진역과 추풍령역은 등록문화재로서 접근성을 강화해 공원 형태의 꽃동산, 꽃길, 주차장 등을 조성해뒀다.
경북에는 영천역, 화본역, 풍기역, 경주역, 청도역 급수탑이 남아 있다. 이 중 화본역과 풍기역 급수탑은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특히 화본역은 외부가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여 관광객들의 인기를 끄는 것은 물론 영화, 드라마에서 추억소환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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