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자신의 결핍과 만나는 배우

입력 2018-01-26 00:05:00 수정 2018-10-17 15:41:38

안민열
안민열

내가 소속된 백치들의 연극배우들과 작업을 할 때 유념하는 질문이 있다. "저 친구가 숨기고 싶은 것을 드러내자." 연기할 인물을 해석하고, 인물이 존재하는 세계를 발견하고, 대사를 외워서 극장이라는 빈 공간에서 행위함으로써 또 하나의 현실을 건설하는 것이 연극이라 본다면 나는 이 질문을 가지며 작업에 임한다.

연극을 선택한 이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결핍이 있어서 이곳을 찾는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타인과 만나고 싶은 의지, 환상의 힘을 빌려 현실을 잊으려는 충동 등이 주를 이룬다. 이런 점들을 외로워서 찾는다고 생각한다. 막연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싶어서 연극을 선택하진 않는다. 즉,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서 발을 딛는다. 그런 그들의 의식'무의식적 자아를 자신이 발견해,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날 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가령 그런 자극을 받을 때 배우들은 굉장히 불편해한다. '네가 뭘 안다고 나를 판단하냐' '나를 그런 식으로 정의하지 마라' '나는 내가 잘 안다'는 식의 대답으로 응수하곤 한다. 그래서 연습을 진행한다는 건, 배우와 연출이 논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말도 틀리지 않다. 타인이 자신에게 내린 평가를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연극의 세계는 그런 행위의 반복이다. 연출은 늘 배우의 시간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배우는 연출의 눈을 의식하며 행위를 판단받게 된다. 그러한 교차 속에서 개인과 개인은 현재를 진단한다. 이런 노동은 왜 필요한 것일까. 극장이라는 빈 공간이 객관적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함이다. 보다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말 한마디와 제스처를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이 연극의 존재 이유라면 이러한 절차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하나의 공간으로 발화되는 것은 중간지대에서 만날 때에 가능하다. 그 지점은 배우가 이끌고, 그다음 관객이 따라 함께 흘러간다. 극 중 환상의 껍질이 벗겨져 실재하는 인간에게 도달한다. 실제(Reality)는 더 이상 실제가 아니게 되고, 피부로 자각하는 지금, 이 순간이 된다.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연극을 선택한 인간, 즉 배우를 꿈꾸는 이들은 자신의 결핍을 발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현실이 기가 차서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배우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나의 연극을 바라보았다. 벤치에 앉아 잠깐 생각하고 바로 자리를 일어났다. 내겐 그 질문이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런 상황일수록 배우와 만나고, 관객을 기다리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답을 내렸다. 배우의 결핍은 곧 나의 결핍이다. 세상이 비극으로 향할수록 예술가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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