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생일날이었다. 작은누나가 동네책방에 나를 데리고 갔다. 열살 터울인 누나가 골라준 책은 니콜라이 고골의 '대장불리바'. 책방 아저씨는 그 책을 누런 종이봉투에 넣어서 내게 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장불리바처럼 용감한 사람이 되라"는 말과 함께. 동네책방에서의 책 선물. 그날의 행복감은 40년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책방 탐방이 취미가 된 것은 그때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 졸업 무렵, '대장불리바 책방'은 문을 닫았다. 세월이 흘러 옆 동네 책방도, 대구 도심의 유명 서점들도 사라졌다. 동네책방은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서비스 및 가격 경쟁력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동네책방 고사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선 예견된 일. 미국에서는 1990년대에 벌어졌다. 1998년 개봉한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은 대형서점과 동네서점의 갈등을 소재로 했다. 영화는 4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네서점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케슬린 켈리(멕 라이언)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길모퉁이 서점'의 주인이다. 어느 날, 가까운 거리에 조 폭스(톰 행크스)가 오너인 대형서점 '폭스북스'가 문을 연다. '폭스북스'는 쾌적한 공간, 양질의 서비스, 싼 가격으로 '길모퉁이 서점'의 단골을 불러들인다. '길모퉁이 서점'은 결국 간판을 내린다.
사라졌던 동네책방이 환생(還生)하고 있다. 전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주인의 개성이 드러난 인테리어와 도서 컬렉션, 그리고 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이 특징이다. 동네책방은 전국에 200~300여 곳쯤 된다. 한 출판사는 문고본 중 일부를 '동네책방용 에디션'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대구의 한 대학교수는 "상당수 학생들이 졸업 후 작은 책방을 창업하려고 한다. 손님들에게 책을 골라주고, 또 책을 소재로 한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 그들의 꿈"이라고 전했다.
내가 사는 동네(대구 북구 침산동)에도 책방이 등장했다. 이 책방은 '책과 삶을 잇는 작은 동네책방'을 표방하고 있다. 인문서적과 그림책을 전문으로 팔면서 독서모임을 주관하기도 한다.
출판시장은 불황이다. 그런데도 동네책방이 되살아나는 이유는 뭘까? 동네책방은 '공감' '대화' '연대' '생활' '취향'을 내세우고 있다. '돈'보다는 '가치'를 중시하는 흐름이 느껴진다. 동네에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생기면 아파트 값이 오른다고 한다. 하지만 동네에 좋은 책방이 생기면 동네의 품격이 달라진다. 조심스럽지만, 희망을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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