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서 봉사자 변신 희망을 담다

입력 2018-01-16 00:05:00

'밥퍼 3인방' 이창우, 서정규, 신경식 씨

노숙인 출신 밥퍼 3인방이 대구역 뒤 광장에 마련된 노숙인무료급식소에서 밥퍼 봉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창우, 서정규, 신경식 씨.
노숙인 출신 밥퍼 3인방이 대구역 뒤 광장에 마련된 노숙인무료급식소에서 밥퍼 봉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창우, 서정규, 신경식 씨.

노숙인에게 밥이란 무엇일까. 일반인에겐 밥은 맛으로 먹는 즐거움의 대체재이지만 노숙인들에겐 생존을 위해 배를 채우는 수단이다. 삭풍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 노숙인들은 한 끼의 밥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 노숙인들은 밥 때가 되면 무료급식소를 전전하고 있다. 하지만 실외 무료급식소는 겨울철에는 추위 때문에 거의 운영을 하지 않는다. 실내 무료급식소는 점심만 제공하고 저녁밥을 주는 곳이 잘 없다. 대구역 뒤편 광장에 마련된 무료급식소는 대구에서 저녁밥을 주는 유일한 실외 무료급식소다. 노숙인들은 저녁만 되면 지하철을 이용해 대구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곳 무료급식소에는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는 노숙인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는 노숙인 출신 '밥퍼 3인방'이 있다. 이창우(76), 서정규(70), 신경식(62) 씨가 훈훈한 감동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하담봉사단이 급식하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저녁에 밥퍼 봉사를 자처하고 있다.

◆따끈한 밥 짓고 광장 청소하기

11일 오후 1시 대구역 뒤편 광장. 열차 하행선의 벽과 맞붙은 컨테이너 안에 밥퍼 3인방이 모였다. 노숙인 150여 명에게 줄 저녁밥 준비를 위해서다. 이곳에서 최고 연장자인 이 씨는 밥퍼 책임자다. 쌀은 20㎏짜리 한 포대 반이 필요하다. 전기밥솥은 35인분짜리 대형 3개가 있다. 전기밥솥에 두 번씩 밥을 지어야 한다. 전기밥솥은 한 번 밥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린다. 밥퍼 3인방은 고무장갑을 끼고 야외 수돗가에 나가 차가운 물을 받아 쌀을 씻는다. 수돗가에는 얼음이 얼어 미끄럽다. 수차례 헹구고 난 쌀은 전기밥솥에 넣어졌다. 3인방은 노숙인을 맞기 위해 광장 청소에 들어갔다. 이 씨는 창고에서 배식 테이블 2개를 꺼내 펼쳤다. 행주로 테이블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깨끗이 닦았다. 신 씨는 배식 테이블, 수돗가 주변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했다. 바닥에 얼어 있는 얼음도 제거했다. 서 씨는 광장 가장자리를 돌면서 깨진 소주병, 일회용 그릇 등을 수거했다. 이렇게 주변정리를 하는 동안 전기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10여 분간 밥을 뜸들이고 난 후 밥뚜껑을 열었다. 수증기와 함께 구수한 밥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3인방은 "밥이 잘 됐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밥이 식지 않게 스티로폼 상자에 밥을 퍼담고 뚜껑을 닫았다. 이들은 다시 쌀을 씻고 전기밭솥에 전기를 꽂았다. 그리고 수저, 식판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삭풍도 녹인 훈훈한 배식활동

저녁밥 배식은 오후 6시 정각에 시작한다. 어둠이 내리는 5시 30분쯤 보이지 않던 노숙인들이 한 명씩 배식대 주변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줄은 남자, 여자 따로 섰다. 30여 분 사이에 30m 이상의 긴 줄이 만들어졌다. 저녁밥 식단은 밥과 소고깃국, 김치, 구운 김이다. 국은 전문 국집에서 주문했고 김치, 김은 밥퍼 3인방이 준비했다. 밥퍼 3인방은 앞치마를 걸치고 밥을 담아둔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나왔다. 하담봉사단원 10여 명도 배식 봉사를 도왔다. 이 씨는 주걱을 들고 밥을 식판에 퍼담았다. 노숙인의 배고픔을 알고 있기에 밥을 수북하게 담아주었다. 공깃밥으로 세 그릇 정도 된단다. 신 씨는 국자로 국 배식을 하고 있다. 고기를 많이 넣어달라는 노숙인에게는 건더기를 듬뿍 담았다. 서 씨는 김치와 김을 담아주었다. 걸음걸이가 힘든 노숙인에게는 밥을 담은 식판을 갖다주기도 했다. 노숙인들은 광장 가장자리 땅바닥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는 최고의 만찬이다. 밥을 다 비우고 한 그릇 더 먹는 노숙인도 있다. 밥을 먹고 난 한 노숙인은 "감사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저녁밥 배식은 1시간여 만에 끝났다. 노숙인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밥퍼 3인방은 뒷정리에 들어갔다. 잔반을 모으고 차가운 물에 식판을 씻었다. 찬바람 속에 설거지는 30여 분 걸렸다. 밥퍼 3인방은 서로 "오늘 수고했다"며 헤어졌다.

◆IMF로 실직 아픔 간직한 3인방

밥퍼 3인방은 모두 외환위기(IMF)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한때 잘나가던 직장에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IMF를 비켜가지 못했다. 그들은 3, 4년간 세상을 등지고 힘든 노숙인 생활을 했다.

이 씨는 10년간 밥퍼 봉사를 하고 있다. 지역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회사를 나온 뒤 토목공사장을 전전했다. 이곳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다 봉사단과 인연이 돼 봉사자로 변신했다. 이 씨는 대구역 근처에 살면서 매일 급식소 주변 청소를 하고 있다. 이 씨는 "나도 힘든 노숙 생활을 경험했다. 추운 겨울 노숙인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신 씨는 밥퍼 봉사 3년 차다. 한때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했다. 실직한 후 환경업체 이사로 있다가 사업이 어려워져 빈손이 됐다. 신 씨는 '나 자신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있다. 신 씨는 "동성로에 나가면 아는 사람이 많다. 밥퍼하면서 만난 노숙인이 먼저 인사할 때 가슴 뿌듯하다"고 했다.

서 씨는 2년째 밥퍼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농기계 회사에서 30년간 전기용접 일을 했다. 일을 하다 손을 다쳤고 눈도 조금 어두워졌다. 지금 성서에서 월세로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다. 서 씨는 봉사를 위해 지하철을 타고 대구역에 온다. 그는 "봉사도 하고 따뜻한 밥도 먹을 수 있어 기쁘다. 작은 봉사지만 노숙인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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