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구 가상화폐 채굴장 가보니…

입력 2018-01-15 00:05:00

[가상화폐 거래 규제 강화 가닥] "극단적 제재 나오겠나" 일단 버티는 투자자들

대구 성서산단의 한 가상화폐 채굴업체 관계자가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수백 대의 채굴 컴퓨터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대구 성서산단의 한 가상화폐 채굴업체 관계자가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수백 대의 채굴 컴퓨터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정부가 가상화폐 시장의 규제 수위를 두고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면서 지역의 가상화폐 투자자들과 채굴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상화폐 투기 과열화를 막겠다며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와 거래소 직권조사 확대, 거래 가상계좌 실명전환은 물론,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거론되는 등 정부가 강경 대응 신호를 계속 내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채굴업계나 투자자들은 거래소 폐지나 가상화폐 채굴 금지 등 극단적인 제재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당분간 버티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채굴업계, 당장 수요 줄까 걱정

지난 10일 찾은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한 가상화폐 채굴업체. 300㎡ 규모의 사무실 안에는 5단 높이의 철제 진열장 수십 개가 늘어서 있었다. 진열장에는 고성능 그래픽카드(GPU)와 채굴용 주문형 반도체(ASIC), 연산프로그램 등이 설치된 컴퓨터 본체 250대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컴퓨터 본체는 투자자들이 가상화폐를 직접 생산하고자 이 업체에 위탁한 채굴기다. 컴퓨터가 내는 뜨거운 열기는 에어컨 3대를 이용해 쉴 새 없이 식히고 있었다. 이곳에 설치된 가상화폐 이더리움 채굴기의 경우 본체 1대가 매달 평균 0.5개의 코인(14일 현재 90만원 상당)을 생산한다. 이곳에서만 매달 2억원이 넘는 가상화폐를 생산하는 셈이다.

가상화폐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의 암호를 경쟁자보다 빠르게 해독하면 코인 매매 장부인 '블록'을 만들 수 있다. 블록을 만든 이는 보상으로 일정량의 가상화폐를 받는다. 채굴업체는 개인들이 투자한 채굴기를 관리해주고 1대당 월 10만~20만원의 관리비를 받는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구에서만 크고 작은 채굴업체가 3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채굴업계는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이 계속 나오자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가상화폐 거래가 위축되면 채굴 수요 또한 줄어들 수 있어서다. 이 업체 대표는 "아직은 채굴 방법을 문의하는 손님이 여전히 많다"면서 "당장 거래소가 폐쇄되거나 가상화폐 채굴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 방침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굴 자체를 금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가상화폐 매매를 투기로 간주하면 채굴 역시 규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비트코인 거래 중단을 지시한 데 이어 올해부터 각 지방정부에 '가상화폐 채굴업체를 질서 있게 퇴출시키라'고 지시했다. 채굴업체의 관리 부주의에 따른 소비자 피해도 나타나 정부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대구 한 가상화폐 채굴업체는 소비자가 채굴기를 맡겨 생산한 코인을 계정 한곳에 담아 관리하다가 해킹으로 모두 잃어버렸다고 주장해 투자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대구 한 채굴업체 관계자는 "채굴업체의 과실이나 의도적 범죄라도 투자자가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가상화폐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채굴업체와 거래소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가상화폐 관련 업종을 합법적 사업으로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버티느냐 vs 발 빼느냐'

가상화폐 투자에 앞다퉈 뛰어들었던 지역 투자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 자체가 냉'온탕을 오가다 보니 투자 여부를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규제 수위를 예의 주시하면서도 당장 투자금을 회수하진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지금까지 정부의 규제 정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출렁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래가를 회복하는 패턴을 보인 점도 이유다.

지난해 5월부터 달서구 한 채굴업체에 채굴기 10대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A(62) 씨는 1억8천만원까지 치솟았던 자산가치가 정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지침'과 함께 30%가량 폭락하면서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확정된 내용이 아니다"고 진화에 나서자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했고, 원래 가치를 거의 회복해 한시름 놓았다. A씨는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실명화 등으로 검은돈만 정리할 것 같더니 갑작스럽게 거래소를 폐지할 수도 있다고 해 당황했다"면서 "지금껏 채굴기 구입에 들인 돈은 회수했으니 앞으로 가격이 더 떨어져도 큰 손해는 없다.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때까지 일단 버텨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 당황하면서 투자 중단 의사도 내비치고 있다. 30대 직장인 B씨는 지난해 11월 가상화폐 투자 성공담만 믿고서 한 인터넷 전문 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려 비트코인을 샀다. 당시 비트코인은 당시 1개당 1천만원에서 이달 5일 2천600만원까지 치솟았다. 한때 1천200만원까지 올랐던 그의 투자금은 지난 14일 950만원까지 줄었다. B씨는 "일단 5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현금화해 대출부터 갚은 다음 남는 코인은 정부의 새로운 방침이 나오는 대로 매도할 계획"이라며 "정부 대책에 가상화폐 가치가 더욱 떨어졌다간 가족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채굴(mining)=가상화폐 생산 프로그램을 실행해 한정된 코인 중 일부를 얻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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