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찾는 이 있었기에…잘 늙은 예배당
경북의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그 건물이, 장소가 품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봅니다. 오랜 세월만큼 많은 이들이 거쳐 갔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들의 흔적을 기록으로 찾아, 때로는 상상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써 나갑니다. 격주로 실리게 될 '근대문화유산과 나눈 대화'입니다.
'안동장노교회의 례배당 신축계획은 수년전동교회 측의 유지제 씨로부터 성안되어 이래 그경비모집에 활동한 결과 다행이 2만여원의 기부금을 수합하고…그 총경비는 약 2만2천원으로 예산보다 수천원 초과된 셈이나 건물의 웅대화려함은 전선 어느 교회당에도 그류를 보지못하리라고 한다.' 1937년 6월 9일 동아일보 5면에 실린 안동예배당 신축 보도 기사다. 1937년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으로 치면 팔순을 넘긴 예배당이다. 손자뻘인 안동교회 100주년 기념관을 옆에 두고 있다. 비교해보려면 해보라는 듯.
◆계성학교 만든 사람이 이곳도
주일예배는 최신식의 100주년 기념관에서 있을 듯했지만 천만에, 교인들은 80년 된 예배당으로 향했다. 예배당은 건재했다. 오장육부가 튼실해 식욕이 왕성한 노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공깃밥을 소고기국물에 착착 말아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삼키는 노인의 모습. 그 모습을 한참 보다 보니 대구 계성학교가 서문시장 옆에 있던 시절, 본관(핸더슨관)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계성학교의 50계단, 안동예배당의 12계단. 담쟁이덩굴에 건축물의 외관을 내어준 것까지도. 알고 보니 이화여대 본관도 같은 사람이 설계한 것이었다.
누가 1930년 당시 그냥 시골이던 안동읍 법상동에 이렇게 세련된 건물을 지었을까. 설계자는 미국인 윌리엄 메렐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es). 선교사로 일본에 있던 보리스는 설계에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곳뿐 아니라 일본제국 곳곳에 160여 동의 근대식 건물 기초를 그렸다. 하지만 이 주변에 주요 종교시설이 모일지는 그도 몰랐을 것이다.
안동예배당은 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하는 안동에서도 국내 유력 종교가 집결한 곳에 있다. 안동교회를 비롯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주임신부로 사목 활동을 시작한 목성동 주교좌성당, 불교 대원사, 유교문화회관, 성덕도 안동교화원 등이 근대 이후 오밀조밀 모여 있다. 조그마한 대학 캠퍼스 크기다. 안동시는
'종교타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사용하기에 더 잘 보존
2015년 12월 16일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때까지 잘 지켜온 예배당이건만 지난해에는 뜻밖의 고초를 겪었다. 문화재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예배당이 교육시설 및 종교시설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됐기 때문이다.
당시 교인들은 황당했다고 한다. "계속 이용하지 말고 보존만 하라는 이야기냐. 대구 동산병원 구관도 등록문화재이고, 심지어 스페인 부르고스 성당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데도 사용하면서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인들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매일 와서 봐야 어디가 잘못됐는지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배당의 목재 출입문, 창틀은 80년이 넘은 것이다. 압권은 마룻바닥이다.
예배당에 들어서 강단으로 걸어가면 옛날 교실을 걷는 소리가 난다. 카펫이 깔려 있어 끼익 끼익 소리가 다소 덮이지만, 마룻바닥을 디뎌가며 교인들은 예배당 80년 역사를 떠올린다. 초를 문질러 마룻바닥을 깨끗이 닦았다던 권사와 장로가 이 교회에는 여럿이다.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을까.
튼튼한 화강암 외관 밑바닥에는 반전스토리가 있다. 예배당을 세운 곳이 반석 위가 아닌 축축한 땅, 늪지대였다는 것이다. 권정국(76) 안동교회 장로는 "안동예배당은 늪지대에 세운 예배당이었다. 그래서 생소나무를 기초로 삼아 화강암을 올린 것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안동 전역을 초토화시켰지만 안동예배당은 예외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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