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행복 100세] ① 프롤로그-베이비붐 세대 '은퇴'

입력 2018-01-02 00:05:04

자녀 돌보다 허리 휘고 노부모 부양 '2중고' 막막하다

100세 시대다. 2005년 이후 10년간 100세 이상 고령자 수가 3.3배나 증가했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은퇴 이후 삶이 길어졌다. 하지만 고령자 진료비가 급증하고, 노인 중 절반은 빈곤 상태이다. 노후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다.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건강을 유지하면서 변화한 사회관계에 적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올해 정년을 맞은 '58년 개띠'들을 포함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를 주목해야 한다. 현재 노인 인구보다 많은 이 세대의 고령화는 100세 시대 노인문제 해결의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은퇴와 노후 준비는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숙제다.

◆'58년생 김영수'의 은퇴

'82년생 김지영'의 부모 세대인 '58년생 김영수'. 올해 3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나왔다. 정년까지 버텼다. 동갑내기들은 이미 절반 이상이 몇 해 전에 퇴직했다. 영수 씨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10주년인 1958년에 태어났다. 그해 출산율은 6.3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지옥 같은 입시를 거쳐 1977년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해 영화 '스타워즈' 1편이 개봉하고, 제1회 대학가요제가 열렸지만 이를 누릴 여유가 없었다. 시국이 어수선해서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77선언'을 발표했고,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정권 비판을 쏟아냈다. 북한이 피아니스트 백건우'윤정희 부부를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그는 도서관보다 시위와 집회가 익숙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 학점이 높지는 않았지만 1985년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1980년대 중반은 수출산업이 급속히 성장했던 시기로 1988년 서울 올림픽 특수까지 더해졌다. 1990년대 초반에는 건설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고도성장을 지속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10년마다 위기가 찾아왔다. 1997년 11월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영수 씨가 마흔이던 1998년에는 직장마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었다. 선배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다시 10년 뒤 2007년에는 금융위기가 터졌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부업체 파산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그가 쉰이 된 2008년은 우울하고 불안했다. 정신없이 버텼다. 저녁이 없는 삶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올해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퇴직이다. 540만원이던 월급이 끊어졌다. 국민연금은 2년 이후에나 받을 수 있고 그나마 퇴직연금은 월 100만원 남짓이다. 창업한 친구 중 70%가 문을 닫는 것을 보니 섣불리 투자를 하기도 망설여진다. 여든이 넘은 어머니를 챙겨야 하고, 결혼하지 않은 아들도 눈에 밟힌다.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다. 은퇴로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민

58년생을 포함한 베이비붐 세대는 노후에 대한 고민이 깊다. 부모를 부양하면서 자녀까지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은퇴 나이이지만 마냥 일을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은퇴설계가 충분하지 못한 탓에 퇴직 이후가 막연하다.

서용해(1959년생) 씨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노후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힘들었다. 당시 캐나다 유학 중이던 큰아들에게 들어가던 비용이 갑절로 늘어나면서 부담이 컸다. 이후 두 아들이 결혼하는 데에도 수억원이 필요했다. 자동차매매업을 하는 서 씨는 자신의 은퇴 나이를 75세로 내다봤다. 월 80만~90만원 수준인 연금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서다. 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농지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노후자금에 보탤 생각이다. 서 씨는 "자식들의 취업 시기가 늦고 아파트값이 비싸서 스스로 결혼준비를 하기가 힘들다"며 "우리 세대는 노후준비를 하고 싶어도 자녀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이능기(1958년생) 씨는 아직도 현역이다. 앞으로 10년을 더 일하고 가업을 자녀에게 물려줄 예정이다. 경북 칠곡이 고향인 이 씨는 29세이던 1987년 대구로 옮겨왔다. 젊은 시절부터 사업을 일으켰지만 2015년에 사업장에 불이 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 씨는 "사업을 다시 본 궤도로 올리고자 일에 몰두한 탓에 국민연금 이외에 따로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고 건강관리나 취미생활도 따로 없다"며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과 딸을 위해서라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직자도 걱정이 없는 게 아니다. 김병두(1956년생) 씨는 2016년 말 종합복지회관장을 끝으로 35년 공직 생활을 마쳤다. 연금 덕분에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지는 않다. 퇴직 5년 전부터 아파트 평수와 씀씀이를 줄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째 병원에 있는 어머니와 서울에서 생활하는 대학생 아들이 마음이 쓰인다. 김 씨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현재 형편에 맞게 생활하면서 건강을 챙기고 있다"며 "보람 있는 사회생활을 유지하고자 초기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과 사회가 함께 대비해야

2020년이면 베이비붐 세대 맏형인 1955년생이 노인(65세) 대열에 합류한다. 인구 비중이 높은 이 세대가 노인이 되면 지역사회의 고령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경북은 6.6명 중 1명이 베이비붐 세대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년 11월 기준으로 대구는 전체 인구 247만6천557명 중 14.6%인 36만1천391명이 베이비붐 세대였다. 이는 65세 이상 노인인구(34만5천942명)보다도 많은 숫자다. 기초자치단체별로 보면 서구가 베이비붐 세대 비율이 18%로 가장 높았고, 남구(16.3%)와 동구(15.2%)가 뒤를 이었다.

경북의 베이비붐 세대는 41만4천501명으로 전체 인구 269만1천878명의 15.6%를 차지했다. 베이비붐 세대 비율이 높은 상위 10곳 모두 인구 고령 문제를 겪는 군 단위 지자체였다. 대표적으로 울릉군과 성주군,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봉화군 등이 19%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사회경제적 영향을 고려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앞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퇴직 후 노인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어서다. 재취업할 일자리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퇴직과 연금수령 나이 사이 공백으로 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또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복지 수요가 늘어나는 등 가중되는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부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대구대 고령사회연구소 소장인 김미령 교수(지역사회개발'복지학과)는 "현재 은퇴 연령은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낮았을 때 정해졌다. 늘어난 기대수명을 고려하면 일본(65세)과 독일(67세)처럼 은퇴 연령을 늦춰 일할 기회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연금 공백 기간을 최소화하고 재정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58년생 김영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 등의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했다.

'영수'는 1958년생 주민등록 남자 중 가장 많이 사용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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