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국제화특구 실효성 논란] "특권 교육 부추겨 문제" vs "다문화 교육 격차 줄여"

입력 2017-12-10 20:10:58

고성 오고 간 대구시청 공청회

계명대 인터내셔널 라운지에서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과 각국 문화, 역사에 대해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구시 제공
계명대 인터내셔널 라운지에서 학생들이 외국인 유학생과 각국 문화, 역사에 대해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구시 제공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시청에서 열린 '수성구, 달성군의 교육국제화특구 지정을 위한 공청회'에선 고성이 오갔다. 이 사업에 반대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구지부 소속 교사들은 "특권 교육을 부추기는 교육국제화특구 사업을 당장 폐지하라"고 주장했고, 대구시 등 행정 당국은 "아이들을 생각해보라"며 맞섰다.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고 공청회에 참석했던 학부모들은 이들의 말싸움에 지쳤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 처음 시작할 때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공청회장은 시작 30분 만에 썰렁해졌다.

◆논란 확산 중인 교육국제화특구

지난 10월 교육부는 '2018∼2022년 교육국제화특구 신규 지정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다문화 학생 밀집지역의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교육국제화특구 지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대구에선 수성구청과 달성군청이 사업계획서를 제출했고, 공청회도 열렸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는 대구시가 검토하고서 11일까지 교육부에 제출한다. 교육부는 심의를 거쳐 내년 초쯤 특구 지역을 선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부 초'중'고 교사들은 "교육국제화특구로 지정하는 취지 자체가 수월성 교육, 특권 교육을 지향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특정 기초자치단체를 선정해 예산과 더불어 교육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앞서 특구 지정을 준비하던 서울시와 세종시도 교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사업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대구시교육청 "아이들을 생각해달라"

반면 대구시, 대구시교육청은 수월성 교육을 조장한다는 주장에 대해 관련 법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는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구시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국비 사업에 지원하는 처지이며, 법안에 대한 문제 제기를 대구시에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난 5년간 벌인 1차 사업기간 동안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 여건을 제공할 수 있었고, 교육 효과도 컸다고 분석했다.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5 년간 시교육청은 북구 옥산초, 달서구 성곡초 등 총 11개 학교를 글로벌 창의모델 학교로 지정, 영어 교사 및 원어민 보조교사를 각 1명씩 추가 배치했다.

또 각종 영어 동아리도 100개 이상 운영하며, 실용영어 교육프로그램인 '321 Happy Together English'도 개발했다.

실제 지난해 모델 학교 학생과 일반 학교 학생의 실용영어 능력을 평가한 결과 모델 학교에서 초등학교 11.57점, 중학교 6.77점 높게 나왔다. 옥산초교 김희숙 교장은 "정부 지원으로 5, 6학년 모든 학생이 영어마을 4박 5일 캠프를 떠나 원어민과 외국에서 생활하듯이 지내도록 하는 등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특구 제도를 통해 교육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서열화, 일반고 죽이기?

특구로 지정된 지자체가 국제중, 국제고 같은 특수목적학교 설립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1차 사업 당시에도 국제고(515억원), 국제통상고(285억원) 설립이 핵심 대형사업으로 꼽혔으나 학교 신설 사업은 교육부가 장기 검토 사항이라는 이유로 유보한 바 있다. 다만 국제고 사업은 '중국 중심의 대구형 국제고등학교 설립 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 대구시교육청 차원에서 추진 중이다.

교사들은 이와 관련,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인 특수목적고교를 줄이려는 현 정부의 방침과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대구시 정책과 맞지 않아 추진할 계획이 없다"며 "1차 연도 사업 성과를 보고 평가해달라"고 말했다.

◆전문가, "소외된 지역 감싸는 특구 제도가 돼야"

양측 갈등이 고조되자 전문가들은 특구 제도가 계층 격차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지 못해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교육 환경이 비교적 우수한 지자체가 특구에 지정된다면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보통교육 정신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특구법에 따르면 특구 지정 요건은 ▷우수한 여건을 갖추고 ▷수요가 형성돼 있으며 ▷기여도가 다른 시'도보다 우수한 지역으로 한정하고 있다. 김규택 계명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이 선정돼 아이들의 기운을 북돋워줄 필요가 있음에도 그런 지역은 신청조차 못 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아울러 관련 법에 따라 각 지자체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대구시와 교육청이 우선 검토한 뒤 교육부 심의를 받게 되는 의사결정 과정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관련 지자체가 사업 프로그램을 모두 디자인하다 보니 자칫 지역이기주의에 빠질 수도 있고, 인프라 투자에 목을 매는 경우도 생긴다. 혜택이 필요한 지역이 소외당하지 않도록 대구시 전체의 교육 여건을 고려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사업 공모과정에서부터 현장 교원을 비롯해 관련기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