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의 침잠
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열린책들 1998
늦가을은 우리네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들, 이 또한 우리네 삶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달력에 눈이 자꾸 간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털어내듯 스스로 자꾸만 위로한다. 두꺼운 옷을 찾아 입듯 삶도 바꿔줘야 할 것 같은, 감정의 슬픈 무질서 안에서 방황하게 된다.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난 베르베르는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1년 120여 회의 개작을 거친 「개미」를 발표함으로써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여행의 책」은 새로운 자기 내면으로 안내하는 한 권의 벗이다. '공기의 세계, 흙의 세계, 불의 세계, 물의 세계'가 조급하고 메마른 세상을 걷는 우리에게 생각의 길을 열어준다. '공기의 세계'에서 우리는 투명한 신천옹(信天翁)으로 당당히 날개를 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어디든지 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는 구름의 언어를 읽으며, 굴곡을 따라 흐르는 삽상한 공기를 마시며 온갖 재주를 부리면 된다. '그대의 길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길이고, 그 길로 그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기 때문에.'(58쪽) 정신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여행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흙의 세계'는 각자의 상상과 재능으로 집을 지으면 된다. 무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없애 버리고 잠시 눈만 감기를 원한다. 사소한 것을 버릴 줄 알게 됨으로써 먼지 낀 창문을 닦아내듯, 자기 생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잘 안 되는 일이 있을 때는 그대의 상징을 불러내어 그대의 심장 속에서 다시 빛을 발하게 하라.'(73쪽) 한겨울에도 내면에 움트는 신비로움을 불러오면 된다.
'불의 세계'에서는 마음속의 온갖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주어진 싸움터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다양한 방법을 예시한다. 투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싸움, 개인적인 적과 싸우기, 체제나 조직에 맞서 싸우기, 질병과 싸우기, 불운과 싸우기, 죽음과 싸우기, 자신과 싸우기 등등 숨 가쁘게 달려와 멈춘다. 그러면 '죽음보다 강한 해학을 잡고' 멈춰선 자리를 북돋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물의 세계에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허파 속에서 살랑대는 물결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탐사로 인해 숨결이 넉넉해진다. 가슴 밑바닥에 숨어 있는 고요와 신비를 맛보면 된다. '생명은 우주의 모든 차원을 아우르는 위대한 힘이다. 그대 안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충동을 느껴보라.'(149쪽)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며 나를 위해 쓰인 문장을 품어도 좋으리라.
여행의 책과 작별한 지금, 늦가을 비가 웅얼웅얼 겨울로 가는 길목을 쓰다듬는다. 이것 또한 잿빛 단조로움을 넓게 퍼뜨리는 열애라는 것을 안다. 그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깊숙이 빠져버린 내면의 침잠 속에서 풍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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