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 지상 개러러리] <7>아르누보 단추의 등장

입력 2017-11-13 00:05:06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국립대구박물관<9월 9일~12월 3일>

단추 산업은 19세기 산업화로 인한 생산량과 소비량의 증가로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1878년 프랑스에는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단추 산업에 종사했다. 파리 북부 우아즈주에 위치한 메뤼마을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자개 단추의 중심지였으며, 파리 남부 루아레주에 위치한 브리아르는 유약을 입힌 도자 단추의 특산지였다. 당시의 백화점은 남성복 도록을 갖추고, 산업적으로 생산된 온갖 모양과 크기의 단추를 선보였다. 동시에 여성계에서도 단추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장갑부터 부츠, 심지어 속옷까지 여성 패션의 최신 유행에 활용되었다.

이렇게 산업사회에 본격 진입하게 되면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제품들은 사회 곳곳에 퍼져 나갔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품질은 조악했다. 기계적인 생산 과정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문제점을 낳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이 바로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이다. 모리스는 자연에서 얻은 소재로 수공예 예술품,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는 새로운 양식을 추구하는 미술공예운동을 일으켰지만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고, 성공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여러 작가들에 의해 19세기 아르누보라는 장식예술 사조로 전개되었다.

아르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건축을 비롯해 가구나 벽지 등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널리 영향을 끼친 아르누보는 기계문명과 전통적인 요소를 부정했다. 자연을 표현하는 소용돌이나 곡선을 주로 사용했고, 파스텔조의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색채를 선호했다. 특히 목판화 등 일본 미술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원근법이나 명암을 중시하는 유럽의 전통에서 벗어나 평면적인 구도를 취했으며 백조, 공작, 나비, 국화, 붓꽃 등 일본 취향의 모티프를 많이 사용했다. 아르누보 단추 또한 이러한 일본풍의 스타일을 잘 반영하면서 기계적인 것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느낌의 일일이 손으로 가공한 단추들을 선보였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아르누보는 20세기 초 새로운 장식예술 사조인 아르데코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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