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가족들이 난리가 났지요."
얼마 전 대구의 한 기업체에 근무하는 유림 집안 출신의 한 간부가 오랜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몇 년 전 문중의 한 어른이 90세가 되자 삶을 스스로 정리하고자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자진(自盡)의 폭탄선언을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나빠진 터라 연명을 포기한 듯했다고 말했다. 당황한 가족들이 강제로 병원에 모셔 연명하고자 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0여 년 전 1970년대 중반, 경북의 한 농촌에서 집안의 70세를 갓 넘긴 어른이 병으로 앓아눕자 곡기(穀氣)를 끊고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자식들, 특히 부인의 애끊는 만류도 뒤로하고 병원 치료조차 거부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임종을 했다는 믿기지 않는 가슴 아린 사연이었다.
불교에서는 흔히 나고 늙고 아프고 죽는 일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의 네 가지 고통으로 손꼽는다. 어쩔 수 없이 맞아야만 하는 운명인 셈이다. 갈수록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오늘날 늙음과 아픔, 죽음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 죽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마침내 '존엄사'라는 말조차 자연스럽게 화제로 떠올리게 된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그동안 무심코 듣기도 하고 책에서 읽기도 했던 '고려장'이라는 슬픈 이야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죽음과 관련된 새로운 현실을 맞게 됐다. 존엄사는 어쩔 수 없이 버림을 받아 죽음에 이르는 고려장과는 달리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죽음을 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마 할 수 없는 선택의 죽음이 존엄사인 셈이다.
그런데 내년 2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스스로 죽음(존엄사)을 맞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지난 23일 시작된 이후 문의가 잇따르고 상담 방문객이 첫날에만 30명쯤이었다고 한다. 존엄사를 선택한 환자도 처음 등록했다고 한다. 상담자 중에는 '아플 때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고 병원에서 오래 치료받는 것보다 편안히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한 이도 있는 모양이다.
듣기 좋게 하는 말이 만나면 헤어지고, 가면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그렇지 않다. 가면 오지 않는 것이 죽음이지 않은가. 신중할 일이다. 가면 꼭 돌아오는 필반(必返)이 아니라 가면 다시 올 수 없는 불반(不返)이다. 삶과 죽음,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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