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자동차로 떠나는 세계여행] ③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입력 2017-10-26 00:05:01

송쿨 게르 호텔은 소의 배설물을 말린 친환경 무공해 천연 연료를 사용하여 난방을 한다. 자다가 코끝이 시려지면 일어나 수동으로 연료를 공급해야 한다.
송쿨 게르 호텔은 소의 배설물을 말린 친환경 무공해 천연 연료를 사용하여 난방을 한다. 자다가 코끝이 시려지면 일어나 수동으로 연료를 공급해야 한다.
카저맨산으로 가는 길은 몽골 산악지대만큼이나 다니는 차가 없는 한적한, 위험한 산악도로이다. 바퀴 옆으로 디디고 설 공간도 없을 만큼 좁고 무서운 벼랑길이 계속 이어졌다.
카저맨산으로 가는 길은 몽골 산악지대만큼이나 다니는 차가 없는 한적한, 위험한 산악도로이다. 바퀴 옆으로 디디고 설 공간도 없을 만큼 좁고 무서운 벼랑길이 계속 이어졌다.

소 배설물 말린 연료로 난방

새벽녘 코끝이 시려질 즈음

연탄 갈듯 일어나 연료 공급

셀 수 없이 만나는 경찰관들

일단 차 세우고 여행자 위협

"죽을 죄 지었다"며 벌금 흥정

카자흐스탄은 동쪽 국경에서 남쪽에 있는 경제 수도 알마티까지 약 1천200㎞나 되며 사흘 동안 달려야 할 만큼 넓은 나라입니다. 국토 면적이 세계에서 9번째입니다. 우리나라의 27배나 되는 큰 나라입니다. 국경을 넘자마자 이슬람 문화가 나타납니다. 마을 입구마다 호화판 공동묘지가 있으며 마을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선'을 넘었을 뿐인데 사람의 모습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산천이 달라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척 어렵습니다.

◆"이런 젠장"입니까, "아이 좋아"입니까

카자흐스탄에서 5일 이상 머물 경우에는 반드시 거주지 등록을 해야 합니다. 이걸 안 했다가 출국 시 하루 10만원이 넘는 벌금을 물었다는 사례가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어, 어렵게 이민국을 찾아갔습니다. 신청 서류를 제출하니 즉석에서 발급한다는 인터넷 정보와는 달리 이틀 후에 오랍니다.

'이런 젠장, 이틀이나 까먹게 생겼네!' '아이 좋아. 이틀이나 더 머물게 되었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관광 모드로 급선회합니다. 알마티 남쪽에 있는 알라타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급경사 오르막이 10여㎞ 넘게 이어집니다. 길 양쪽으로 삼청동 북악스카이웨이 인근의 고급 주택들보다 더 크고 웅장한 초호화 저택들이 즐비합니다. 삼엄한 경비, 으리으리한 시설…. 알마티 부호들의 동네입니다.

부자 동네를 지나 계속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인적이 끊겼습니다. 눈과 얼음에 뒤덮인 해발 2,700m쯤에서, 차를 돌릴 곳을 찾는데 눈앞에서 우리 차보다 큰 바위가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 바위가 길에 떨어질 때의 울림, 절벽으로 구르며 아름드리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모습을 보니 핸들 쥔 손도, 페달 밟은 다리도 후들후들 떨려 간신히 내려왔습니다. 사람, 참 초라한 미물입니다.

◆자기 구두와 내 운동화를 바꾸자고 하는 경찰

국토는 넓고, 자원도 많고, 풍광도 빼어나고…. 여행자는 모든 게 부럽습니다. 그러나 입국 후 며칠 동안 스무 번 넘게 검문을 받았습니다. 경찰관만 보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입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힘든 건 비포장도로도 아니고, 구멍 난 도로도 아닙니다. 도로에 뛰어드는 말이나 양도 아닙니다. 곳곳의 으슥한 곳에 대기하고 있는 경찰관입니다. 무조건 세웁니다. 전조등을 안 켰다고, 선팅을 했다고, 비자가 없다고, 거주지 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세차를 안 했다고. 온갖 꼬투리를 잡다가 결국은 '팅게'를 달라고 합니다. 심지어 내 선글라스를 가지고 도망가려 한 경찰도 있었고, 내 운동화가 탐나니 바꾸자고 한 경찰관도 있었습니다. 큰 금액도 아니고, 도로 통행료 대신 낸 셈 치다가 나중에는 그 실랑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국경에서의 생이별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국경도시 코데이의 출국장에는 차량도, 사람도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나는 차량 행렬에 대기하고, 아내와 막내는 도보로 출국심사대를 거친 후 키르기스스탄으로 들어갔습니다. 세관원은 내게 자동차 운행허가 서류를 달라고 합니다. 북쪽 국경으로 들어올 때 그 서류를 달라고 하니 전산처리되니 필요 없다고 그냥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들에겐 자동차 입국 기록이 없으니 차를 가지고 출국할 수 없다고 합니다.

생이별은 이렇게 쉽게 시작되었습니다. 통관에 곤란한 문제가 생겼으니 다시 이쪽으로 재입국하라고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정사정, 애걸복걸하니 그 국경에서 20㎞ 떨어진 세관본부로 가서 서류문제를 해결하고 그쪽 국경을 통과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시간이 많이 경과되었으니 두 사람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을지 뻔합니다. 200㎞라도 서슴없이 가야 할 판입니다. 한달음에 차를 돌려 달려갔습니다. 손짓, 발짓, 몸짓으로 사정하고 호소하고, 뇌물을 주고서야 겨우 통과했습니다.

거의 일곱 시간의 생이별 끝에 겨우 상봉을 했습니다. 그동안 '일단 정지' 표시를 무시했다며 낡은 벤츠를 타고 상향등을 켠 채 끝까지 따라온 뚱보 경찰관(뒤차의 저 친구도 나처럼 긴박한 사연이 있나 보다 하고 달렸습니다), 미화(US) 500달러 벌금을 내야 하나 200달러로 깎아주겠다는 또 다른 배불뚝이 경찰관의 위협과 결국 100달러로 흥정하는 소란통에 가족 상봉 행사는 무산되었습니다. 참으로 요란하고 지긋지긋한, 끔찍한 입국절차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그 국경에서 불과 20㎞ 떨어진 비슈케크 시내로 들어와서 숙소를 찾는 길에도 경찰관과의 악연은 몇 번이나 더 끈질기게 이어졌습니다.

◆죄지은 것 없어도 경찰을 피해 다녀야

일단 무조건 세웁니다. 반대편에서도 차 돌려 와서 세우고 그냥 지나치면 따라와서 세웁니다. 여권을 요구합니다. 면허증도 요구합니다. 자동차 서류도 요구합니다. 그러고는 뺏어 들고 자기 차로 가버립니다. 내가 자기들 차에 타고서야 협상을 시작합니다.

마치 '외국인 여행자의 금전 탈취를 위한 기본 합동 교육'을 수료한 양 천편일률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두 나라 경찰들의 행동 패턴이 같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네 말로 협박조로 시작합니다. "너는 죽을 죄를 졌다. 경찰서 가서 며칠간 조사를 받든지, 몸으로 때우든지, 500달러를 내야 한다. 나는 무척 마음이 좋은 사람이다. 나한테 걸렸으니 정말 럭키하다. 200달러만 내고 가라, 100달러로 깎아 줄게, 이게 마지막 딜이다 50달러. 이것도 안 되면 경찰서로 가자 30달러. 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 뭐라고 5달러? 10달러로 젠틀하게 끝내자." 이런 실랑이를 하루에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셀 수 없이 겪어야 합니다.

◆키르기스스탄의 보석 송쿨

제주도보다 더 큰 이식쿨호수를 이틀 만에 한 바퀴 돌아보고, 송쿨(Sonkol)호수로 갑니다.

호수로 가는 길은 험준한 비포장 산악도로입니다. 해발 3,000m를 넘어 수목한계선을 지나자 주변엔 나무 한 그루 없습니다만 소 떼, 양 떼, 말 떼가 정말로 떼를 지어 눈 녹는 물을 밟으며 올라가고 있습니다. 왼쪽은 겨우내 켜켜이 쌓인 눈, 오른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입니다. 오금이 저립니다. 힘겹게 해발 3,800m 고개를 넘자 거짓말처럼 초원이 펼쳐집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다며 그 보상으로 선물을 주듯이 키르기스스탄의 보석 호수, 송쿨호수가 멀리 자태를 드러냅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시야 안에 하얀 게르 몇 채를 제외하면 인공 건축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연을 망치는 건 언제나 사람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광도 사람이 등장하면 별로입니다.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여기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별 다섯 개, 오성 게르 호텔

나귀를 타고 다가온 아이들로부터 자기네 게르에 머물기를 권유받고 후하게 흥정을 했습니다.

오성 게르 호텔은 친환경 천연 무공해 연료를 사용하여 난방을 합니다. 소의 배설물을 말린 그것입니다. 냄새? 그런 거 없습니다. 자다가 코끝이 시려지면 일어나 수동으로 연료를 공급해야 합니다. 새벽에 연탄 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땐 참 서글펐는데, 여기선 모든 게 재미있었습니다. 여섯 겹의 요를 깔아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차단하고, 세 겹의 이불을 덮습니다. 덮으니 무겁고, 걷어내니 춥고…. 거위털 침낭과는 비교가 안 되는 보온성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보름달이 떠올라 기대하던 송쿨고원에서의 별 보기는 망쳤지만 별똥별도 수십 줄기나 보았습니다. 이런 호숫가에서 하룻밤 보냈다는 사실도, 다시 와서 며칠 머무르며 힐링하고 싶은 곳을 찾았다는 것도 여행의 참재미의 하나입니다. 송쿨에서,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슬아슬 최고의 스릴 카저맨산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고 또 길을 떠났습니다. 호수와 작별하고 서남쪽으로 카저맨(Kazarman)을 향합니다. 몽골 산악지대만큼이나 다니는 차가 없는 한적한, 그리고 위험한 산악도로입니다. 바퀴 옆으로 내가 디디고 설 공간도 없을 만큼 좁고 무서운 벼랑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나는 이런 길을 다니는 게 참 즐겁습니다. 여행의 3대 요소인 체력, 시간, 자금이 허용된다면 꼭 바이크를 타고 다시 달려보고 싶은 스릴 넘치는 길입니다.

톈산산맥의 끝자락인 키르기스스탄에는 산과 강, 호수와 계곡, 사막과 초원, 고원과 평원…. 몽골과 카자흐스탄에 있는 자연은 전부 갖고 있었습니다. 조물주가 이 세상을 만들 때 장난삼아 주물러 놓은 듯 별별 희한한 모양의 산들이 수백㎞ 줄지어 있습니다. 그런 멋진 경관이 너무 많으니 감동은 곧 시들해지지만 시선을 쉽게 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산이 있다면 당연히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을 텐데 여기서는 그냥 흔하디 흔한 산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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